유로존 위기로 ‘독일이 지배하는 유럽’ 탄생했다
입력 2013-04-01 20:12
영국의 유명 소설가 로버트 해리스는 자신의 소설 ‘파더랜드’에서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해 라인강부터 카스피해 연안까지 지배하는 거대한 독일제국 이야기를 다뤘다. 다행히 현실에서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만일 실제로 독일이 전 유럽을 지배한다면 어떻게 될까.
영국 일간 가디언은 31일(현지시간) 키프로스 사태와 같은 유로존 위기가 ‘독일이 지배하는 유럽’과 같은 정치적 괴물을 탄생시켰다며 독일의 파워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왕관만 쓰지 않은 유럽의 여왕이라며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에 빗대 ‘메르키아벨리’라고 표현했다.
신문은 특히 새로운 독일의 힘이 예전과 같이 무력을 동원한 것이 아닌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라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주장을 덧붙였다.
실제로 유럽중앙은행(ECB)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독일은 유로존 위기 극복과정에서 세금 회피와 긴 점심시간 등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그리스와 스페인, 키프로스 등에 각각 2400억, 1000억, 100억 유로 등 천문학적인 돈을 지원했다. 이에 맞춰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이들 국가는 독일이 자신들을 루저(loser) 취급하고 인간적인 존엄마저도 뺏고 있다는 반감이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독일은 이들 국가가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독일 자신이 그랬듯 청빈한 삶을 살아야만 경제회복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신문은 독일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정신적, 도덕적으로 피폐했던 상황이 다시 이런 경험을 해서는 안 된다는 ‘네버 어게인 신드롬’으로 발전했다고 전했다. 즉 키프로스에 이례적으로 예금과세를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런 긴축만이 경제회복의 열쇠라는 점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울리히 벡은 이런 상황을 “독일은 금욕이나 청빈한 삶을 강조한 마르틴 루터나 막스 베버의 철학이 기본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신문은 독일이 청빈사상을 바탕으로 다른 유로존 국가를 위기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정체성을 갖게 만들었다며 더 이상 나치주의나 인종주의자가 아닌 바른 사고를 가진 선생님이나 도덕적 계몽주의자로 여겨지질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독일이 경제적으로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화를 포함한 소프트파워에서 미약하기 때문에 경제적 지배를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그 예로 유럽 어디에서도 독일어를 배우려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영화나 TV 프로그램 역시 유럽에서조차 주목받지 못한다는 점을 들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