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예측 실패… 돼지 농가, 가격 폭락 뿔났다

입력 2013-04-01 18:07 수정 2013-04-01 22:29


돼지 농가들이 거리로 나섰다. 가격 폭락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어서다. 2010년 터진 구제역 사태로 이듬해까지 300만 마리가 넘는 돼지를 살처분했던 축산업은 2년여 만에 최악의 가격 폭락 사태를 맞아 존폐 기로에 섰다. 정부의 관측 실패와 농업 행정력 부재, 일부 축산 농가의 이기심이 얽히고설킨 결과다.

대한한돈협회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협회는 “지난해 9월 이후 7개월째 이어지는 돼지 가격 폭락으로 돼지 한 마리당 12만원씩 손해를 보고 있다.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오는 10일쯤 전국 농가가 참여하는 규탄 집회를 열기로 했다”며 국회 인근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2010년 구제역 발생 직전 ㎏당 4000원 안팎에서 형성됐던 돼지고기 가격은 살처분 여파로 마릿수가 줄면서 2011년 6월 7000원대로 뛰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2000원대로 급격하게 내려앉았다. 불과 2년여 동안 널을 뛰었다.

돼지 농가는 가격 폭락에 더 민감하다. 구제역 때에는 그나마 가격이 좋아 버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심각하다. 농가들은 “가구당 피해액이 1억6000만원으로 총 9500억원을 넘어섰다”며 “이런 상황이 3개월 이상 이어지면 한돈 농가의 80% 이상이 도산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돼지 농가는 가격 폭락의 직접적 원인으로 정부의 무차별적인 무관세 돈육 수입을 지목한다. 구제역 발생 이후 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돼지고기 무관세 수입, 대기업 축산업 진출 허용, 품목물가 담당제 등을 시행하면서 농가들이 도산할 위기에 빠졌다는 주장이다.

2010년 구제역 당시 축산농가들은 전체 사육 돼지의 30% 이상을 살처분했다. 이 시기는 매년 되풀이됐던 가격 폭락과 폭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때이기도 했다. 정확한 수요예측을 바탕으로 한 생산량 조절로 적정한 가격을 언제든지 보장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기회였다.

하지만 현재 정부의 수요·생산 예측 기술 수준으로는 장기적 관점에서 앞날을 내다보기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제역 사태 이후 돼지 농가가 철저히 축사를 소독하고 청결에 신경을 쓴 결과 자라지 못하고 죽는 새끼돼지가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정부는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어미돼지는 연간 20마리 정도 새끼를 낳는데 구제역 이전에는 15마리 정도가 죽지 않고 시장에 내다팔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 하지만 구제역 이후 환경이 개선되자 17마리가 넘는 새끼들이 죽지 않고 자라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돼지 가격은 지난해보다 50%가량 하락했지만 소비자들이 먹는 식당 돼지고기 가격은 별로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복잡한 유통구조 탓에 식당에서 판매하는 고기값은 15%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기존의 수요·생산 예측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와 함께 유통구조에 대한 대책도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수요·생산 관측을 기반으로 장기적인 정책을 펼치려면 관측 기술이 최소한 2년 앞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6개월 정도를 예측할 수 있다”며 한계를 토로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