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으로 성경공부 하고 싶은가요? 솔깃한 제안에… 포교 위해 카드 영업사원으로 위장취업까지
입력 2013-04-01 17:53 수정 2013-04-01 18:10
신천지에 입교했다 탈퇴 후 피해자 돕고있는 김미경씨
김미경(50·여)씨는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났다. 어머니와 함께 기도원에서 금식기도로 새해를 시작할 정도로 신앙이 좋았다. 하지만 성경을 읽을 때면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10년 전인 2003년 4월 자신을 선교사라고 소개한 여성 2명을 만났다. 그들은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먼저 자신들과 며칠간 개인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는 ‘신천지 신학원’에 들어가기 전 일반 교회 성도들을 1대 1로 포섭하는 ‘복음방’ 과정이었다.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신앙 연수가 몇 년인데 그 정도도 분별 못하겠느냐”며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이는 6개월 과정의 무료 성경신학원으로 이어졌고 이어 2개월간 ‘비유풀이’까지 공부했다. 40년 신앙생활의 체증이 확 풀리는 듯했다.
신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교적부를 썼다. 2004년 3월부턴 신천지 집회장소에 나갔다. 한여름에도 모두가 정장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2시간 동안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이만희씨가 집회 장소에 도착하자 그토록 단정해 보였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며 눈물을 흘렸다.
‘아니, 이건 뭐야? 북한이나 사이비 집단에서나 볼 수 있는 건데.’ 그러나 그녀도 3개월이 지나자 그들과 똑같이 됐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3개월 집중교육은 교주가 시대의 목자이고, 그가 있는 곳은 약속의 성전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반면 일반 목회자들은 개, 돼지라고 불렀다.
입교 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지 않고 포교활동을 했다. 오전 9시 구역장 회의 후 오후 5시까지 포교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휴대전화로 구역원들의 활동을 점검하고 밤늦게까지 포교전략을 짰다. 365일 변함없는 일과였다. 포교를 위해 카드 영업사원으로 위장취업도 했다. 밖에서 아무리 뭐라 해도 ‘이만희 교주를 통해 성경말씀을 깨달아 하나님을 더 잘 믿게 됐다’고 자부했다.
그래도 ‘이단상담’만은 절대 피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단상담을 피하기 위해 자필로 신변보호요청서를 작성하고 인감증명서까지 제출했다. 도와줄 사람의 집 주소, 전화번호, 직장전화, 차량번호·색깔까지 알려줬다. 이단상담을 피하지 못하면 자해를 하든 뛰어내리든 응급실로 실려가야 한다고 배웠다.
2004년 5월 고등학생이던 딸도 데리고 갔다. 2010년 초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부모형제와 남편이 이단상담을 권유했다. 김씨와 딸은 울면서 “절대 그럴 수 없다”며 맞섰다. 거듭되는 설득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흉기까지 휘두르고 이혼도 요구했다. 딸은 형광등을 깼다. “엄마, 자꾸 상담 받으라고 하면 이걸로 손목을 긋자고요.”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처럼 생각됐다.
2010년 1월 23일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에서 상담을 받으며 이만희 교주가 어떤 인물이고 어떻게 교주가 됐는지, 교리가 성경과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됐다. 연도별로 구원자와 배도자가 오락가락하는 현상도 확인했다. ‘2∼3년만 참으면 14만4000명이 채워지고 천년왕국이 시작된다’고 했지만 20년 전에도 똑같은 주장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동안 배운 것은 모두 거짓이었다.
김씨는 지난해 2월부터 신천지 피해자들과 함께 대전종교문제연구소를 설립했다. 상담실장으로 150여명의 피해자를 돌봤다. 현재 대전 새로남교회에 출석하는 김씨는 “만약 누군가 신천지 교리를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마치 몸속에 암덩어리가 들어온 것과 같다”면서 “신천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이단대처 세미나인 만큼 이를 자주 개최해 사전에 피해를 예방하는 게 최선책”이라고 말했다(070-4227-0093).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