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의 기적] 손 찧으며 온종일 망치질로 1000∼2000원 벌어

입력 2013-04-01 17:15 수정 2013-04-01 21:57


네팔의 돌깨는 아이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가 있는 네팔. 수많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그 이면엔 세계 최빈국으로 기아와 질병, 빈곤이 악순환되고 있으며, 인구 2600만여명이 3억3000여 신을 섬기는 우상의 나라라는 그늘이 있다. 또 네팔에는 5∼17세 아동 노동자 150만명이 존재한다. 많은 어린아이들이 책가방 대신 돌멩이가 담긴 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교과서 대신 벽돌을 만들며 하루를 힘겹게 보낸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50㎞ 떨어진 마하데브베시. 하루 종일 돌 깨는 망치질 소리가 끊이지 않아서 ‘돌깨는 마을’로 불린다. 200여 가구가 계곡에서 흘러내린 돌을 주워 건축용 자갈을 만들기 위해 망치질을 한다. 마을 아이들은 새벽부터 오른손에 자신의 팔뚝보다 굵은 큰 망치를, 왼손엔 고리를 들고 강가로 나온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돌을 깨서 받는 돈은 고작 1000∼2000원에 불과하다.

이곳에서 만난 수렘 미자르(7)의 손은 나무껍질처럼 거칠고 건조했다.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팔이 많이 아프지만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소년은 망치질하다 다친 손가락을 보여주며 “다행히 부러지지 않았고 이제 다 나았다”고 말했다. 수렘은 “친구들처럼 학교에 가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쟁하듯 열심히 돌을 깨고 있던 꼬마 다가스(8)와 삼디(9)는 형제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2년 전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뒤 엄마와 강가에 움막을 짓고 살고 있었다. 아이들의 엄마 마야 머거(45)는 아이들이 일하는 게 안쓰럽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돌을 깨다 손이나 머리를 다칠 수도 있고, 돌의 파편이 눈에 들어가면 실명할 수도 있어 불안하고 걱정스러워요. 그렇지만 먹고사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어 할 수 없어요. 한 달에 3000루피(5만원) 정도 벌어요. 그래도 CDP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어 감사하지요.” 아이들은 기아대책의 CDP(Child Development Program)로 학교에 다니면서 꿈을 키워가고 있다. CDP는 1대1 결연을 통해 저개발국가 아동을 후원(신앙·식량·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네팔의 대다수 부모들은 아이들이 글만 깨치면 도시로 나가 돈을 벌게 한다. 여자 아이들의 사정은 더욱 딱하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힌두교의 풍습으로 교육을 아예 받지 못하고 13∼18세에 조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석티콜 치트완에서 농사를 짓는 기타마야 번다리(30)는 15세에 결혼해 17세에 첫 아이를 낳았다. 그녀가 당장 원하는 것은 알코올중독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그보다 더 바라는 것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이 치료를 받아 걷게 되는 것이다. 매일 여동생 번저나(11)가 오빠 어닐(13)을 등에 업고 1시간을 걸어 등하교시켜주고 있다.

또 네팔엔 120여개 소수민족이 있다. 이들 중 문맹률이 90%로 가장 낙후된 부족은 체빵부족이다. 이들은 평지에서 밀려나 산에 움막을 짓고 산다. 마을주민들은 지난해 옥수수 생산량이 급감해 심각한 기근에 허덕이고 있다고 말했다. 로타 마을의 서마야 체빵(30)은 “몇 년 전 영양실조로 두 살짜리 아들을 잃었다”며 “이제 다른 두 아들 역시 같은 길을 가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서마야는 “내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근처에 일할 수 있는 데는 아무 곳도 없다. 가족들이 야생 뿌리와 풀로 연명하며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3년 전엔 한 가족이 독버섯을 먹고 8명이 목숨을 잃은 일도 있다”며 “체빵 마을에서 매년 영양실조로 인해 어린아이들이 죽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체빵 마을의 풀마야 체빵(14·여)은 하루 종일 산에서 나무뿌리와 풀을 구하러 다닌다. 풀마야는 “식량이 점점 떨어져 풀과 곡물을 섞어 지은 죽을 먹고 있다. 지금은 하루 한 끼를 먹을 수 있지만 건기(4∼5월)가 되면 걱정”이라고 말했다. 배가 고파서 3시간이나 걸어가야 하는 학교엔 갈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3만원의 기적’이 만들어진다. 치트완에 살고 있는 리타 타파(17)는 4학년 때부터 CDP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10학년을 마치고 정부에서 주관하는 SLC 시험을 1등급으로 통과했다. 리타는 “CDP센터에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호사가 되어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체빵 부족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리타는 “부자로 살고 싶지 않으냐”고 묻자 “부자는 자기만 위해 사는 것이지만, 남을 위해 사는 것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3만원의 기적을 보는 순간이었다.

한편 기아대책은 카트만두 외곽 지역에 있는 마타트리타 마하데브베시 석티콜 등 3개 마을 2000명의 아이들을 기아대책 CDP로 양육하고 있다.

카트만두=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