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에 바흐의 음악 선율 담아냈다”… 세계적인 조각가 존배 ‘기억의 은신처’ 개인전
입력 2013-03-31 18:39
세계적인 조각가 존배(76)는 1949년 독립운동가인 아버지와 러시아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듬해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모는 구호 활동을 한다며 귀국하고 열세 살의 그만 홀로 남았다. 두 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는 열다섯 살에 미국에서 개인전을 가질 정도로 재능을 보였지만 혼자 생활하기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그런 중에 126년의 전통을 가진 미술대학인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서 그의 실력을 알아보고 4년 장학생을 제안했다. 대학 진학 후 회화에서 조각으로 전환한 그는 매일 밤늦도록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했다. 대학원까지 장학금으로 나온 그는 27세이던 1965년 이 학교의 조각과 최연소 학과장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30년간 후학을 양성하며 조각 분야 교육프로그램을 정립하기도 했다.
이 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그가 25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기억의 은신처(In Memory’s Lair)’라는 제목으로 7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50년 작업을 정리하는 전시로 철사를 건축물처럼 이어 붙여 자신이 좋아하는 바흐의 음악 선율을 리듬감 있게 표현한 작품 20여점을 선보인다.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재료 선택부터 용접과 마무리까지 전 과정을 혼자 진행했다.
지난 30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제 작업은 순간순간 결정에 따라 형태가 정해지기 때문에 재즈 음악과 비슷하다”고 소개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겉은 서로 달라도 내면으로 들어가면 모두가 똑같이 가진 ‘하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과학에서는 원자가 있고 음악도 한 개의 음에서 시작하는데 그 ‘하나’라는 개념을 갖고 작업했지요.”
수십 년째 하루에 10시간씩 작업에 매달리다 보니 그의 오른손은 신경통으로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태다. 그럼에도 이 작업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철사는 비싸지 않고 튼튼하지만 녹이 슬어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생명체와도 같은 느낌이라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3일 오후 3시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들려주는 ‘아티스트 토크’가 전시장에서 열린다(02-2287-350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