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당·정·청에 쏟아진 반성, 말의 성찬 안 되길
입력 2013-03-31 18:47
경직된 국정 시스템 보완하고 진정성 있는 소통 나서야
청와대가 지난 30일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쏟아진 쓴소리들을 받아들여 소통을 강화하고 경제 살리기에 힘을 모으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 조치들이 말의 성찬에 그치지 않고 국정운영의 새로운 틀로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열린 고위 당·정·청 워크숍에서 국정난맥상에 대한 개탄과 반성의 목소리가 분출한 것은 예견됐던 일이다. 정부조직법 협상이 지각 타결되고, 고위 공직 후보자들이 줄줄이 중도사퇴하는 ‘참사’ 등이 벌어지면서 새 정부의 국정 지지도가 하락세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워크숍에서 이런 문제점이 지적되자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과했고, 유민봉 국정기획 수석은 모호한 창조경제 개념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회의에 앞서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은 인사 난맥상과 관련해 별도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허 실장은 당·정·청 워크숍에서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하지만 지금이라도 고칠 건 고쳐야 한다”고 인사 검증 체제의 개선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허 실장의 사과는 진정성 논란을 빚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이 사과문을 대독한 것을 두고 민주통합당은 “또 다른 오기”라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인사 실패에 따른 문책 인사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하자 야당은 대통령의 직접 사과와 문책을 요구했다. 야당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사과를 할 바엔 제대로 형식을 갖춰 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였다고 본다.
청와대의 사과가 당·정·청 회의에서 쏟아질 비판을 희석하기 위한 수단이거나 4·24 재보선을 앞두고 여권 갈등을 미봉하려는 일시적 방책이어서는 안 된다. 인사검증 문제가 이제 한 고비를 넘긴 만큼 ‘말로 천 냥 빚을 갚겠다’는 식이 돼서도 곤란하다. 인사와 국정운영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말이 아니라 반드시 제도와 정책을 통해 보완돼야 한다.
임기 초 박근혜 정부의 국정이 흔들린 것은 인사 검증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주요 공직자 후보자를 선별하는 일뿐 아니라 국정방향과 주요 정책을 입안하고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도 전반적인 소통 부족과 하향식 의사결정 체제가 문제를 일으켰다. 따라서 국정 결정 과정이나 피드백의 경직성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고민이 필요하다.
당·정·청이 회의에서 소통 강화를 위해 정책협의회를 구성하고 고위 워크숍을 정례화하기로 합의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야당과의 소통을 위해 여야 ‘6인 협의체’를 본격 가동키로 한 것은 적절하다. 하지만 회의가 잦다고 소통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여당을 국정의 동지,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식하고 진정성 있는 소통에 나서는 게 중요하며, 올바른 비판은 흔쾌히 수용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정치는 국민을 바라보고 국민을 위해 하는 만큼 적절한 시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나서 국정의 방향이나 원칙 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도 소통의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