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정지자에 ‘車 빼달라’ 문자 보낸뒤 체포 ‘함정’… 판례로 본 함정수사·유도수사
입력 2013-03-31 18:16
여성가족부가 지난 29일 대통령 업무보고 때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유도수사 도입을 넣어 개정하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유도수사가 사실상 법이 금지하는 ‘함정수사’ 아니냐는 것이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그동안의 재판 판례는 원칙적으로 함정수사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불법을 부추겨 범죄 의사가 없는 일반인을 범죄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히로뽕 투약 혐의로 기소됐다가 2007년 10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김모(39)씨 사례가 그렇다. 김씨는 2002년 히로뽕을 투약했다가 10개월 동안 옥살이를 한 뒤 마음을 다잡고 야채행상을 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과거 알고 지냈던 임모씨에게서 “마약을 사라”는 전화를 받았다.
김씨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임씨는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 마약을 강권했다. 김씨는 결국 임씨 꾐에 넘어가 마약을 투약하다 경찰에 검거됐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모든 게 경찰의 계략임이 밝혀졌고, 김씨가 받은 돈도 경찰이 임씨를 통해 건넨 공작비였다. ‘함정수사’에 넘어간 김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경찰이 면허정지된 차주에게 ‘차량이동 바랍니다. 구청공사’라는 문자를 보낸 뒤 잠복해 있다가 무면허 운전 현장을 적발했지만 재판부가 공소 자체를 기각한 사례도 있었다. 경찰이 불법 환전이 의심되는 컴퓨터 도박장에 위장 잠입한 뒤 업주에게 지속적으로 사이버머니를 현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한 사건 역시 불법 함정수사로 결론 났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2010년 경찰이 손님으로 위장해 성매매 단속을 벌인 것은 함정수사가 아닌 정당한 수사라는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당시 서울 강북경찰서는 관내 여관에 경찰관을 손님으로 위장시켜 성매매 현장을 포착했다. 업주는 함정수사라며 반발했지만 재판부는 “업주가 숙박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성매매 여성을 알선해줄 의사를 갖고 있었다”며 경찰의 손을 들어줬다. 취객을 부축하는 척 다가가 지갑을 훔치려다 잠복해 있던 경찰에게 체포된 경우도 합법적인 수사라는 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경찰이 취객을 그대로 방치한 건 잘못됐다”고 비판했으나 “범죄를 부추긴 게 아니라 적법한 수사였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법적용이 까다로운 부분이어서 관련 내용에 대한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하지만, 아직 그런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함정수사 자체가 불법인 만큼 여성가족부의 유도수사 도입은 법리적으로 검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