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기금=은행행복기금?… 부실채권 높은 가격에 매입땐 은행권 이익

입력 2013-03-31 18:19

국민행복기금이 은행권을 살찌우는 ‘은행행복기금’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어차피 헐값으로 넘어갈 부실채권에 정부가 세금을 들여 지나치게 비싼 값을 쳐주기 때문이다.

31일 금융소비자협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행복기금은 현재 부실채권시장에 형성된 거래 관행보다 높은 채권 매입가율을 적용해 연체 대출채권을 사들일 계획이다.

이해선 금융위원회 중소서민금융정책국장은 지난 28일 민주통합당이 주최한 국민행복기금 관련 정책토론회에서 “채권 매입률은 평균 10% 내외로 보면 된다”고 언급했다. 금융위는 금융회사에서 매입하기로 한 59만5000명의 채권 9조5000억원에 대한 매입비용을 8000억원 정도로 잡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가 채권추심기관을 자처해 은행의 이익을 챙겨준 모양새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부실채권시장에서 6개월 이상 연체된 신용대출의 매입가격은 보통 원가의 5% 미만 헐값으로 거래되기 때문이다. 5%의 ‘시장가’를 적용하면 매입비용은 475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금소협은 “정부가 부실채권을 비싸게 매입하고 있다”며 “금융권의 흔들기에 무릎을 꿇은 셈”이라고 꼬집었다.

증권가의 은행업종 애널리스트들도 국민행복기금의 부실채권 정리 작업이 엉뚱하게 은행의 배를 불려 줄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증권은 국민행복기금 설립 발표 이후 “은행 업종에 대해 긍정적 시각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김재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1년 이상 연체채권의 경우 매각 시점에서 오히려 이익이 발생한다”며 은행업종을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은행권 관계자도 “부실 연체채권을 정부가 후하게 회수해 가면 감사할 따름”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박병원 국민행복기금 이사장은 일부러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가 많아질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를 감안, 국민행복기금으로 연체 채무를 일제 정리하는 것은 단 한 번으로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4040곳에 달하는 협약 기관들로부터 두 차례 이상 (연체 채권을) 인수하는 것은 물리적·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못 박았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