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중증장애인도 근로 활동… 제품 값싸고 품질 좋아
입력 2013-03-31 17:50
시범을 보여 달라고 하자 오후 4시 퇴근을 준비하던 카트린이 사회복지사 마이크 파머에게 눈짓으로 말했다. ‘내가 해볼게.’ 처음 작업장에 왔을 때 혼자 버튼조차 누르지 못해 의기소침했던 중증장애인 카트린에게는 놀라운 변화였다.
지난 2월 7일 오후 독일 이절론시에 위치한 공익작업장. 장애인 130명이 사회복지인력 40명과 함께 일하는 부품조립공장이다. 카트린의 작업대 위에는 손동작이 자유롭지 못한 중증장애인이 서류 속 정보를 컴퓨터로 옮길 수 있도록 돕는, 롤러와 스캐너를 이어 붙인 특수기구가 놓여 있었다. 카트린이 롤러를 밀자 스캐너가 마트 계산대의 “삑” 소리를 냈다. 곧 컴퓨터 화면에 숫자들이 떴다. 경증장애인 동료들이 하루 조립한 배수관, 수도꼭지 수량에 대한 기록이다.
카트린이 속한 작업실은 오피스그룹으로 불린다. 조립작업이 힘든 중증신체장애인들이 이곳에서 컴퓨터의 도움으로 작업장 ‘서무’ 역할을 해낸다.
파머는 “장애가 아무리 심해도 모두에게 일이 주어진다. 해야 할 일이 있고 목표가 있다는 게 중요하다”며 “작업은 상태를 개선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손가락도 못 움직이던 이가 몇 개월 만에 느리지만 타이핑을 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옆방에서 일하는 스테파니는 ‘불량률 5%’에 불과한 이곳 작업장의 베테랑 불량품 감별사다.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고무링이 잘못 끼워진 배수관은 그녀 앞 컨베이어벨트에서 정확하게 선별된다. 건물 안쪽은 깨끗하고 저렴한 세탁서비스로 동네에서 인기가 높은 세탁장이다. 다운증후군 등을 가진 28명의 장애인 세탁부가 하루 200㎏의 옷가지를 처리한다.
기독교 계열 비영리 민간복지재단 기독교봉사회(디아코니)가 운영하는 공익작업장은 이절론시에만 5곳이 있다. 직원 1000명에 연매출 3600유로(약 514억원)의 중견기업. 정신 및 신체질환 등 장애 종류와 정도에 따라 구분된 개별 작업장은 도시 내 산업단지 안에 입주해 인근 일반기업으로부터 건축자재 같은 부품조립 물량을 수주받아 운영된다. 평균 임금은 1인당 월 300∼400유로(약 43만∼57만원). 생활비는 장애인연금으로 충당하고 월급은 취미생활과 쇼핑, 저축 등에 사용한다.
사회복지사 안드레아 크론샤겐은 “30∼40년 전에는 장애인들이 작고 외진 작업장에서 목공예 같은 제한적 품목을 생산했다”며 “지금은 일반기업이 필요한 건축자재 등을 다른 하도급업체와 동일한 품질로 생산한다”고 말했다.
일반기업이 장애인 작업장의 제품을 사면 장애인 의무고용비율을 30% 삭감받을 수 있다. 이윤추구가 목적이 아닌 사회적기업인 만큼 제품 가격도 조금 낮다. 기술 책임자인 하인즈 군터 토비에스는 “납품 날짜를 지키고 품질을 훌륭하게 유지하고 있다”며 “가격 싸고 질이 좋아 파트너 기업들로부터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이절론(독일)=글·사진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