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3부)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 ⑤ 민간이 움직이는 복지시스템
입력 2013-03-31 17:39 수정 2013-03-31 20:08
“저는 잘 몰라요(웃음). 유치원 한 달 수입이나 지출도 얼마인지 모르는 걸요.” 지난 2월 초 독일 하겐시 호엘린북에 위치한 무지개유치원에서 만난 유타 카라스(51) 원장은 교사 월급을 묻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유치원=카라스 원장은 무지개유치원에서 25년째 일하고 있다. 주 30시간 시간제 교사로 시작해 만 2∼5세 영유아 70명과 교사 10명을 관리하는 책임자가 되기까지 줄곧 무지개유치원에서만 일해 왔다. 유치원 일이라면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지만 무지개유치원이 한 달 보육비로 얼마나 거둬들이는지, 교사 월급과 운영비 같은 지출은 어느 정도인지 아는 바가 없다.
예산과 관련해서 카라스 원장이 관심 갖는 항목은 교구재 비용 정도다. 장난감, 미술도구, 악기 등이 낡아 교체해야 할 경우 구입비로 연 3000유로(약 430만원)쯤 쓴다. 구매 결정권이 원장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새 교구재가 필요하면 재단 산하 운영기관에 신청해 협의 후 결정한다.
카라스 원장은 “유치원 재정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잘 모를 뿐더러 내가 챙겨야 할 일도 아니다”며 “원장은 교사들을 어떻게 교육할지, 인근 초등학교와 어떤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할지, 지역사회와 교류는 어떻게 할지를 고민한다. 그게 내가 진짜 신경써야 할 문제들”이라고 말했다.
◇원장이 ‘돈’에 무관심한 이유=카라스 원장이 말하는 ‘재단’이란 기독교봉사회(디아코니)를 가리킨다. 디아코니는 무지개유치원 같은 보육시설뿐만 아니라 병원과 노인요양원, 장애인 기관 등 전국적으로 2만7000여개 사회복지 시설을 운영하는 독일의 대표적 비영리 민간 복지재단이다. 돈이 개입하는 경영 업무는 디아코니 소속 운영기관들이 전담해 처리한다. 인구 2만7000명의 호엘린북 지역에만 디아코니 소속 유치원 3곳이 있다.
부모가 유치원에 직접 돈을 낼 일이 없다는 것도 유치원으로부터 ‘돈 걱정’을 없애줬다. 독일은 완전 무상보육이 아니다. 부모의 소득(14구간)에 따라 보육료를 낸다(대신 자녀 1인당 184∼215유로의 아동수당을 받는다). 연봉 3만6000유로(약 5100만원)인 중산층 부부가 자녀 1명을 주당 35시간 유치원에 보낼 때 드는 비용은 월 119유로(약 17만원)다. 하지만 연소득 1만7500유로(약 2500만원) 미만 저소득층이라면 무료, 10만 유로(약 1억4300만원) 초과 고소득층은 월 57만원을 내야 한다. 내는 보육료를 알면 부모 소득이 적나라하게 공개될 수밖에 없다.
대신 부모는 보육료를 하겐시에 낸다. 부모가 매년 10∼12월 월급명세서를 시에 신고하면 이를 토대로 시 공무원이 연간 소득을 계산해 유치원비 고지서를 발부한다. 부모 계층이 유치원에 알려질 경로가 원천 봉쇄돼 있는 셈이다.
경영에서 손을 뗀 대신 유치원은 교육 방식에 관한 권한을 폭넓게 위임받았다. 카라스 원장은 “1년에 한 차례 보건국 위생검사와 위탁기관의 안전검사를 받는 것을 제외하면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없다”며 “대신 부모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빠지면 운영기관에서 조사를 나온다. 다행히 내가 있는 동안 무지개유치원에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특별활동’이 없는 독일 유치원=무지개유치원에서는 가르치는 게 없다. 책상별로 모여 앉아 그리고, 만들고, 뒹구는 ‘놀이’ 외에 시간 정해서 하는 수업이라고는 ‘하루 30분 오늘의 체육’과 ‘하루 10분 읽기 쓰기’가 전부다. 체육은 희망자 원칙이다. “오늘 체육 할 사람 모이세요.” 이날도 교사의 외침에 따라 ‘빨간방’ ‘파란방’ ‘초록방’ 아이들이 체육실로 모여들어 구르고, 뛰고, 던지며 놀았다. ‘읽기 쓰기’는 이듬해 초등학교에 갈 만 5세 중 독일어에 어려움을 겪는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두 가지 모두 별도의 비용은 없다. 모든 원생이 영어 체육 미술 같은 ‘특별활동’을 하고 전원 ‘특별활동비’를 내는 한국 어린이집과 달리 진짜 ‘특별’ 프로그램이다.
카라스 원장은 “체육의 경우 매일 하는 애들도 있고 2∼3일에 한 번 하는 아이도 있다. 너무 체육을 싫어하면 권유하기는 하지만 강제하지는 않는다”며 “아이들이 ‘배우는 법’을 스스로 배우도록 하는 게 독일 교육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반은 연령을 섞어 짠다. ‘3세반’ ‘4세반’ 나이에 따라 묶는 한국과 달리 2∼5세를 반드시 뒤섞는다. 러시아계, 폴란드계 등 비독일계 이민자들도 독일계와 비율을 맞춰 반을 구성한다. 카라스 원장은 “큰애는 작은애를, 작은애는 큰애를 위하는 사회적 배려를 익혀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겐(독일)=글·사진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