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현미] 우리를 숨쉬게 하는 것들

입력 2013-03-31 18:46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고 시인은 썼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고 시인은 썼다. 반칠환 시인의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이라는 시 이야기이다.

바야흐로 만화방창의 시절이 오고 있다. 구례 산수유꽃축제, 진해 벚꽃축제, 여수 영취산진달래축제, 한강여의도 봄꽃축제…(꽃축제 많기도 많아라!). ‘고향의 봄’이란 노래 가락처럼 온 나라의 산과 들녘이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로 세팅될 날이 코앞에 들이닥칠 것이다. 그러면 꽃처럼 울긋불긋 차려 입은 사람들의 행렬도 전국적으로 꽃 대궐 앞에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다. 올해는 나도 그 행렬에 동참해 볼까 싶어 모바일웹으로 ‘2013 봄꽃 개화지도’를 열어본다. 전국의 유명 꽃놀이 장소를 미리 보고, 관련 리뷰도 읽을 수 있다. 360도 파노라마 지도 로드뷰로는 여의도 윤중로, 독산동 벚꽃십리길, 부산 청학동 벚꽃축제, 진해 군항제, 경남 화개장터 벚꽃축제, 섬진강 꽃길, 제주 성산포해변공원 유채꽃밭을 직접 가지 않아도 내 손바닥 안에서 볼 수 있다니 좋은 세상이다!

그러고 보니 이 좋은 세상을 두고 어머니는 꽃구경 한 번 못해보고 저세상으로 가셨다. 뇌수술 후 혼수상태에 빠져 국립의료원 중환자실 신원불상의 부랑자들 ‘불세곡’, ‘불고구마’, ‘불공항’, ‘불장발’님들 사이에 산소호흡기를 낀 와불처럼 누워 있던 어머니. 80세 90세 장수가 더 이상 희귀한 일만은 아닌 요즘과 비교하자면 꽃다운 환갑을 갓 넘기고 돌아가신 어머니.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살아 돌아오신다면 꼭 함께 꽃구경 가고 싶은 어머니.

올봄 자주 자주 숨이 막힌다. 검찰에 불려간 동료 작가들 소식, 장관들의 낙마 소식, 판문점 핫라인 차단 소식…. 우리를 숨쉬게 하는 것들이 필요하다.

안현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