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성규] 담뱃세 인상 논쟁을 지켜보며
입력 2013-03-31 18:47
보건복지부는 2008년 ‘Say No’라는 간접흡연 근절 캠페인을 실시했다. 공공장소에서 흡연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비흡연자가 당당히 “No”라고 말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캠페인은 간접흡연의 위험성을 대중적으로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있었다. 흡연자들이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히게 된 것이다.
한국의 담뱃값 인상을 두고 흡연자와 비흡연자들 간에 극심한 감정대결이 펼쳐지는 양상이다. 금연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흡연이 야기하는 각종 질병과 조기 사망을 막는 것이다. 그 목표를 위해 세 가지 접근법을 취한다. 신규 흡연자를 줄이고, 기존 흡연자의 금연을 돕고, 간접흡연 피해를 막는 것이다. 세 목표는 골고루 주목을 받고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루었어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국내 금연정책은 세 번째에 과도하게 집중돼 왔다. 금연구역을 확대해 간접흡연을 예방하는 데만 모든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온 것이다.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 극단적 대립 구도는 편중된 정책이 조장한 측면이 있다.
금연정책은 결코 흡연자를 ‘공격’하는 걸 목표로 삼지 않는다. 비흡연자를 위해 흡연자의 권리를 훼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물론이고 금연운동 단체 및 전문가들은 금연정책에 대한 흡연자들의 이런 오해를 풀어줘야 한다.
금연정책이 정치적 목적으로 해석되거나 비판받아서도 안 된다. 금연정책은 근본적으로 흡연자와 그들의 가족을 돕는 것이고, 더 나아가 안정적인 사회의 초석을 마련하는 것이다. 또한 담뱃값이 인상될 경우 흡연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이런 설득을 통해 금연정책이 대립이 아닌 건강한 사회구현을 위한 화합의 수단임을 인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담뱃값 인상이 서민경제를 더 힘들게 만든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담배는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값싼 ‘벗’이다. 따라서 담배 가격이 인상되면 서민들은 ‘벗’을 유지하기 위해 더 큰 경제적 부담을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흡연의 긍정적인 효과”라거나 “세상에는 담배보다 해로운 것들이 많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는 1990년대 간접흡연의 위험성에 대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발표됐을 때 다국적 담배회사들이 들고나온 논리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담배 회사들은 과학자들을 매수해 “대기오염물질이 담배연기보다 더 해롭다”며 대대적으로 반격했다.
또 다른 이들은 담뱃값 인상을 세수 증대를 위한 꼼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 세계 어떤 나라도 세수 증대를 위해 담뱃세를 인상하지는 않는다. 담뱃세 인상의 취지는 금연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고, 사회적으로 강력한 금연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담뱃세로 마련된 재원으로 흡연자의 금연을 지원하면 더 많은 이들이 담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들은 담배에 쓰던 비용을 다른 경제활동에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담배산업을 장려해 왔던 ‘원죄’가 정부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원죄는 흡연의 피해를 몰랐던 ‘무지’에서 야기된 것으로, 전 세계 모든 정부가 함께 지고 있다. 담배의 해악이 밝혀진 지금 전 세계 176개국 정부들이 금연정책 강화를 위해 국제적 협정서에 서명했다. 한국도 동참했다. 지금은 담뱃값 인상을 포함해 정부가 추진하는 강력한 금연정책에 힘을 모아줄 때다.
이성규 미 캘리포니아대 담배규제硏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