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승훈] 4월 1일

입력 2013-03-31 18:57

한동안 아이폰을 쓰지 않으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느낌이 드는 시기가 있었다. ‘휴대전화도 전화인데 통화만 잘 이뤄지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고집으로 버티다 2010년 뒤늦게 소위 아이폰 유저 대열에 합류한 이유 중 하나는 왠지 혼자만 뒤처지는 듯한 미묘한 느낌 때문이었다.

2007년 6월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내놓은 이후 몇 년간 애플은 전 세계 소비자의 감성을 사로잡았고 문화를 주도했다. 분명 대량생산된 제품이었으나 아이폰은 소비자가 어떤 앱을 사용하느냐, 어떤 기능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기가 됐다. 새로운 소비자들은 아이폰을 통해 마치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애플은 아주 세세한 디자인에까지 자사 제품에 대해 최고라는 이미지를 만들었고, 그 속에서 애플 제품을 쓰는 상당수 소비자들은 ‘애플 마니아’가 됐다. 길거리에서 같은 옷을 입은 이들을 보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과 달리 검은색 폰에 하얀 이어폰을 꽂고 있는 아이폰 유저의 모습을 만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전 세계 수백만명이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아이폰을 들고 이어폰을 꽂고 다녔지만 소비자들은 자신의 아이폰을 대량생산된 그저 그런 휴대전화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개성과 결합된 기기로 인식했다. 오래 전부터 마니아층을 형성했던 애플이라는 기업의 이미지, 경영자 스티브 잡스의 최고 지향주의,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은 제품이 유기적으로 결합됐기 때문일 것이다.

애플이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으로 각광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드웨어 산업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을 거쳐 콘텐츠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던 컴퓨터 산업의 발전 과정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혁신을 통해 그들이 지향했던 목표가 동시대 소비자의 감성과 적절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물러나고 사망한 이후 최근 몇 년간 애플은 더 이상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이전에 보여줬던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새로운 제품을 내놓고 있고, 아이폰을 들고 다니는 소비자들은 적지 않지만 사용자들의 자부심은 몇 해 전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4월 1일은 한동안 애플 마니아들에게 만우절이 아니라 애플 설립 기념일로 기억됐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진 듯하다. 어쩌면 이제 4월 1일은 애플 직원들에게나 의미 있는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