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정욱] 재정절벽과 신자유주의
입력 2013-03-31 18:57
재정절벽, 시퀘스터. 요즘 미국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들에 자주 등장하는 생소한 단어들이다. 대선이 끝난 후 미국의 민주, 공화 양당은 재정정책과 예산안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양당 간 최대의 쟁점은 2011년 미국 정부의 재정 적자가 위험수위에 달하게 되면서 제정된 예산방지법 발동에 대한 대처방안이다. 예산방지법으로 인해 정부 부채 규모에 따라 예산을 자동적으로 삭감하는 정부 지출의 급격한 감소 즉 재정절벽이 현실화하면서 향후 경제정책의 향방이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정부의 복지지출을 유지하면서도 재정 적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부자증세를 선호하고 있지만 정부 규모 축소와 증세 반대라는 전통적 정책을 주장하는 공화당은 재정절벽을 복지 예산 축소의 기회로 삼고 있어 예산안에 관한 양당 간의 견해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오바마가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경제위기에 효율적인 대처를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선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공화당 밋 롬니 후보의 경제정책이 유권자 다수의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공화당이 정부 기능 축소, 감세를 축으로 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매달리기 시작한 것은 리처드 닉슨 2기로 그 연원을 소급할 수 있다. 대선에서 복지정부를 흑인을 위한 정부로 간주한 백인들의 표가 대거 민주당에서 이탈하고 뉴딜 개혁세력이 정치적으로 침몰하는 것을 묵도한 닉슨은 1930년대 이래 국가 확장 정책의 이론적 기초였던 케인즈주의를 경제 불안의 근원으로 공격하기 시작했고 로널드 레이건기에 이르러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한 국가 재편이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경제정책은 부유층에 대한 감세,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 및 민영화, 복지 축소, 노조 약화를 추진하는 것이었고 미국정부의 재정 적자 역시 이 시기부터 지속적으로 낮아진 소득세율에 큰 원인이 있다.
그러나 공화당의 정치적 우세를 기초로 하여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진된 지 30여년이 지난 미국의 모습은 어떠한가? 경제학자 딘 베이커에 의하면 이 30년 동안 미국의 상위 5%의 소득이 30% 증가한 반면 하위 25%의 소득은 25% 이상 감소하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또한 보수정당이 종교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어 신자유주의 정책의 수용에 소극적이며 사회민주주의가 강세를 보이는 유럽의 국가들과 대비해볼 때 미국은 경제의 양적 지표면에서 확연히 뒤처지게 되었다. 베이커가 지적하듯이 신자유주의의 실패는 뉴딜 정책이 지배했던 2차 대전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시기가 성장률, 생산성, 분배율 등 양적 지표들에서 모두 신자유주의 시기를 능가했다는 점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신자유주의가 호언했던 성장이 나타나지 않았던 반면 오로지 작동하고 있는 것은 뉴딜기의 유제인 복지제도뿐인데 공공정책 전문가 수전 메이어가 지적한 것처럼 복지제도는 미국인의 삶을 개선시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것이 최악의 상황에 빠지는 것을 막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칼 마르크스는 진리란 오로지 실천을 통해 검증될 때만 성립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가 예상했는지 모르지만 이 원칙은 사회주의 실험에도 냉혹하게 적용됐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와 비교할 때 사회주의는 단 한 번의 실험 기회를 얻었을 뿐이었다. 반면 신자유주의는 서로 다른 시기 여러 번 검증의 무대에 섰지만 성공한 사례가 없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영국, 미국 그리고 아마 한국이 또 다른 실패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복지국가 체제에는 성공 사례가 있다는 점과 대조적이다.
미국이 재생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남긴 이념적 경직성을 버려야 한다. 역사적 경험을 반추할 때 이러한 사고의 경직성이 불러올 결과는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제 세계 최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기로에 서 있으며 정치는 그 시간을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김정욱(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