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리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예수 분노와 좌절,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요”
입력 2013-03-31 17:23
뮤지컬 배우라면 누구나 욕심을 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작품.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하 ‘수퍼스타’)가 그렇다. 음역대가 넓고 고음을 목청껏 내질러야 하는 록 뮤지컬, 여기에 복잡한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연기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여러 배역 중에서도 주인공 지저스는 더욱 그렇다. 신의 아들과 인간의 삶 사이에서 고뇌하는 그는 사랑하는 제자의 배신에 분노하며 세상 사람들의 기대와 요구에 힘들어한다.
6년 만에 한국을 찾은 뮤지컬 ‘수퍼스타’에서 지저스 역을 맡은 배우 마이클 리(39)를 최근 서울 신문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미국에서 ‘수퍼스타’만 4차례, 총 400여회 공연한 베테랑이다. 2006년에는 ‘미스 사이공’의 주역으로 한국에 왔다.
마이클 리는 한국인 부모를 둔 이민 2세대. 미국 서부 명문 스탠퍼드대 의대를 다니다가 배우로 새 삶을 살게 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안정적인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매력적이지만 불안정한 배우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아버지와 형이 의사여서 자연스럽게 의대에 진학하게 됐지만, 방학 때 영화·뮤지컬 분야에서 인턴을 하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 4학년 때 ‘미스 사이공’ 오디션을 봤고, 주연에 발탁됐다. 그는 “후회는 없었다. 꿈꾸던 일을 할 수 있게 돼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지금은 두 아이를 두고 있는 가장이 되다보니 ‘안정성’이라는 가치도 굉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수퍼스타’와의 인연도 깊다. 고등학교 시절 연극에서 빌라도 역을 맡으며 뮤지컬 배우라는 꿈을 품었다. 2000년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무대에서 시몬 역, 2005년 세인트루이스의 1만2000석이 넘는 원형 야외무대에서는 유다 역을 했고, 2011년 시애틀의 빌리지 극장에서는 지저스와 유다 역을 번갈아 맡았다.
한국계로 미국에서 살면서 소수자의 삶을 경험했던 마이클 리는 ‘그 시대의 아웃사이더’였던 지저스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그는 “예수가 신이 되기 전에는 인간이었다.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지저스의 분노와 좌절 공포 그리고 사랑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음악 얘기가 나왔다. 마이클 리는 “(영국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오페라의 유령’ ‘캣츠’ ‘에비타’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수퍼스타’가 최고”라며 “클래식 음악과 록 스피릿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내는지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겟세마니’다. 마이클 리는 “놀라운 곡이다. 지저스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줄 수 있는 노래다. 록 스타일이지만 스토리텔링이 훌륭하다. 정말 좋은데 부르긴 어렵다”며 웃었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아시아인이 거의 없는 동네에서 자란 그는 집에서도 영어만 썼다. 한국어는 아직 초보 단계. 한국어 공연에 대한 부담도 크다. “2006년 ‘미스 사이공’ 공연 때는 발음에 신경 쓰기도 바빴지만 이번에는 한국어의 뉘앙스도 배우고 있다. 큰 도전이지만 즐기고 있다. 같이 지저스 역을 맡은 배우 박은태가 많이 도와준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의 공연계도 많이 다르다. 미국에선 연습이 끝나면 각자 흩어지지만 한국은 뒤풀이도 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다. 그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금방 적응됐다. 출연진 중 나이가 많은 편이라 다들 존중해준다”고 말했다. 그가 ‘수퍼스타’ 공연을 하는 동안 한국계 아내와 아이들도 이곳에 머물며 한국을 익힐 예정이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