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페루 김명수 선교사] ④ 산골소년 헤수스의 교회 정착기

입력 2013-03-31 16:59 수정 2013-03-31 17:31


‘안데스 소년’ 달동네 여름성경학교에 처음 와서는…

올해 열 살인 헤수스(Jesus)는 안데스 산맥의 아야꾸초 지방 해발 4000m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헤수스의 부모는 그와 여동생을 데리고 더 나은 삶을 찾아 지난해 말 수도인 리마로 내려왔습니다. 헤수스 가족은 먼저 리마에 정착한 친척의 소개로 리마의 ‘만차이’ 지역 ‘레따말 계곡’에 거처를 마련했는데, 때마침 저희 교회(감람산교회)가 지난 2월 말 나흘 동안 진행한 여름어린이성경학교에 헤수스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만차이 지역은 리마의 부자촌인 ‘라 몰리나’ 지역과 유원지인 ‘시에네기야’ 지역 사이에 위치한 곳입니다. 리마 시내 중심지에서 그리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 도로에서 벗어나 산을 하나 넘어야만 하는 위치적 특성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잊혀진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포화상태에 달한 리마의 토지 형편은 결국 만차이 지역에도 개발 바람이 불게 만들었습니다. 10년 전 황무지였던 이 지역이 이제는 거주 인구만 10만명이 넘는 주택 지역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물론 언덕에 게딱지처럼 붙어 있는 빈민 주택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레따말 계곡은 만차이에서도 끝 쪽에 위치한 데다 다시 꺾어 들어가야만 하는 지역으로 2∼3년 전부터 개발이 시작된 곳입니다. 그래서 리마 시내에서 집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지방에서 이제 막 오는 사람들은 레따말 계곡에 둥지를 틉니다. 서울로 올라온 시골 사람들이 비싼 집값 때문에 서울에는 진입하지 못한 채 언저리 도시에 자리를 잡았던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레따말 계곡에 사는 거주자는 1만5000명을 훌쩍 넘었습니다. 앞으로 10만명은 거주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계곡 안에는 아직까지 학교나 병원, 교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버스를 타고 만차이에 있는 공립학교나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고, 몸이 아플 때는 만차이의 보건소나 10㎞나 떨어져 있는 산 너머 다른 지역의 병원에 가든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버티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리마 시내에 있는 우리 신학교의 캠퍼스가 레따말 지역에 세워지게 됐습니다. 좀 더 넓은 캠퍼스가 필요해서 새 캠퍼스 후보지를 찾던 차에 레따말 계곡에 버려진 33만㎡(약 10만평)의 야산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보는 순간 그 야산을 미래의 신학교와 기독교 대학의 캠퍼스로 삼아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찍어뒀습니다. 그리고 ‘저 산지를 내게 주소서’(수 14:12)의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이어 레따말의 주택조합들을 상대로 대지를 우리에게 기증하면 우리가 학교를 지어 운영하겠다는 제안을 하며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이 제안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져서 현재 대지 기증과 학교 설립 절차를 밟고 있는 중입니다.

이와 별도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교회와 보건소를 건축하려고 먼저 600㎡(약 181평)의 땅을 구입했습니다. 그 대지에 연건평 480㎡(약 145평)의 2층 건물(1층 보건소, 2층 예배당 및 식당) 공사를 마치고 준공한 때가 지난해 12월 1일이었습니다.

공사가 진행 중인 지난해 7월부터 공사장 귀퉁이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12월부터 새 건물의 2층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말 레따말 계곡에서 처음으로 여름 어린이 성경학교를 열었던 것입니다.

이번 여름 어린이 성경학교에는 70여명의 어린이가 등록했습니다. 그중 50여명이 교회(개신교)에 처음 와본 어린이들이었습니다. 당연히 어린이 성경학교에도 처음 참석해보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교회의 찬송가는 들어보지도, 불러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율동은 더더구나 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이제 막 개척한 우리 교회에는 교사들이 없기에 다른 교회에서 지원을 온 청년 교사들이 팔을 걷었습니다. 경쾌한 리듬의 어린이 성경학교 주제가를 율동과 함께 가르쳤는데, 레따말의 어린이들은 몇 명만 겨우 따라하려는 모습을 보였고, 대부분 말똥말똥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특히 10대 남자 아이들은 ‘아니 저 남자들이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우두커니 서서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레따말 계곡에 개척한 감람산교회의 첫 번째 여름 어린이 성경학교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그중에서도 헤수스와 그 가족의 경험은 더 특별했습니다.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요란한 음악 소리와 광고전단에 끌려서 헤수스의 가족은 교회 앞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헤수스와 그 여동생은 도무지 교회 안으로는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첫날인데다 부모들도 이 교회가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체 모임을 하는 시간에 교회 마당 주변에 의자들을 놓고 부모들이 앉아서 함께 구경하도록 배려했습니다. 헤수스의 부모도 안 들어가겠다고 버티는 아이들을 겨우 달래서 교회 마당까지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헤수스 남매는 엄마의 치마를 꼭 잡고서 도무지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헤수스는 얼굴이 까무잡잡한 시골티가 확연한 아이였습니다. 교회도 낯설어했지만 무엇보다 또래의 리마 아이들이 낯선 듯 보였습니다. 시골에서 처음 상경한 아이가 서울 아이들이 낯선 것처럼 말입니다.

분반 공부를 하러 2층 예배당으로 올라갈 때였습니다. 전체 모임 동안 엄마 곁에서 구경만 하던 헤수스에게 다가가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갈 수 있도록 그의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그러자 황급히 손을 빼더니 줄행랑을 치고 말았습니다. 헤수스는 이렇게 여름 성경학교 주변을 이틀 동안 맴돌며 구경하면서 간식과 선물만 받아가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3일차가 됐습니다. 이제 레따말의 아이들도 큰 목소리로 찬양을 따라 부르고 율동도 제법 그럴듯하게 따라하기 시작했습니다. 10대 남자 아이들은 아직도 삐죽대기는 했지만 반별 경쟁이라도 벌어지면 제법 잘 따라하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헤수스는 엄마와 함께 2층 예배당에까지 올라와 분반 공부하는 책상 귀퉁이에 앉아서 바라볼 정도로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나흘간 진행된 성경학교는 끝이 났습니다. 지원을 나온 선생님들도 본 교회로 돌아가자 주일의 교회학교에는 원래 모였던 어린이들과 몇몇 어린이가 더 나오는 수준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문 앞에서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는데, 헤수스 엄마가 두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나왔습니다. 헤수스와 여동생이었습니다. 반갑게 두 아이를 안아주고 교회에 올라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때 헤수스가 엄마를 바라보았습니다. 엄마가 손을 흔들며 어서 올라가라고 손짓을 하자, 헤수스는 동생 손을 잡더니 교회 예배당으로 성큼성큼 올라갔습니다.

헤수스를 비롯한 레따말 어린이들의 교회학교 출석은 아직도 들쭉날쭉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이 심겨져 있고, 교회 선생님들의 사랑이 심겨져 있습니다. 교회가 레따말에 있는 동안 어린이들은 계속 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들이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섬길 일꾼이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 18:16∼17)

김명수 페루장로교신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