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공정거래위원장

입력 2013-03-29 18:47

미국의 잘 나가는 대기업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반독점법이다. 이 법에 한 번 걸렸다 하면 그야말로 뼈도 못 추릴 정도로 혼쭐이 난다.부당이득의 최고 세 배에 이르는 벌금과 소비자(피해자)들의 집단 손해배상청구소송에 직면하게 된다. 재판부는 종종 천문학적 규모의 징벌적 배상금을 물린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00년 엄청난 규모의 벌금은 물론 기업분할 명령을 받을 위기에 빠진 적이 있다. MS의 대표적 독점지위 남용 혐의는 운영체계인 윈도우를 팔면서 인터넷 검색도구인 익스플로러를 ‘끼워 팔아’ 업계의 기술혁신을 저해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예일대 법과대학원의 한 교수는 이같이 말했다. “독점사업자의 범법행위를 추적하는 것은 상징적으로 중요하다. 어떤 기업도 법을 어기고 무사할 수는 없다는 믿음으로부터 사회는 이득을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 반독점법에 해당되는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 최근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2009∼2011년 3년 동안 125건의 공정거래법 위반에 따른 기업들의 부당이익은 25조1408억인 반면 과징금은 2조4294억원에 그쳤다고 한다.

새 정부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낙점됐던 한만수 후보자가 낙마했다. 세법전공 변호사로서 주된 생애경력을 대형 로펌에서 쌓은 그에게 공정거래위원장 자리는 애당초 부적격이었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의 위상은 지난 정부에서부터 하향곡선을 그어 왔다. MB 정부시절 세 명의 공정거래위원장 가운데 두 명이 비전문가다. 김동수 전위원장은 재정경제부에서 물가정책을 주로 담당하던 관료 출신이다. 그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위상을 ‘경제검찰’에서 ‘물가검찰’로 바꿔 놓아 ‘물가동수’라는 달갑잖은 별명을 얻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 공약의 일환으로 징벌적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등을 제시했다. 독점적 지위의 남용과 담합 등을 실질적으로 제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개혁들이다. 공정거래위원장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열정은 물론 뛰어난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자리다. 누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올지는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어느 정도 열의를 갖고 추진할지를 판단할 바로미터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