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아주고 직장 구해준 탈북청년, 새 환경 못견디고 다시 거리 떠돌아
입력 2013-03-29 18:08
탈북자들 부적응 심각… 사회적 배려 절실
탈북자 김모(27)씨는 지난 1월 서울 성동구의 한 PC방에서 27시간을 지낸 뒤 사용료 2만4800원을 내지 못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김씨가 3년 전 북한을 탈출해 중국과 태국, 라오스 등을 돌며 꽃제비 생활을 하다 국내에 들어온 딱한 사정을 접했다. 김씨는 탈출 과정에서 북한 보위부에 붙잡혀 심하게 얻어맞기도 했다.
서울 성동경찰서 경찰관들은 의지할 데 없는 김씨를 위해 PC방 사용료를 대신 내줬고 수소문 끝에 한 의류업체에 취직도 시켜줬다. 당시 김씨의 사연은 언론에 미담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29일 확인 결과 김씨는 당시 취직 하루 만에 그만두고 또 다시 인근 PC방에서 지내다 경찰서에 갔다. 경찰은 김씨에게 다시 선행을 베풀었다. 김씨의 PC방 사용료 15만원을 대신 내줬고, 영등포의 한 노숙인 시설에 김씨를 소개했다. 김씨는 시설 입소를 위해 건강검진을 받다가 결핵균이 발견돼 지난 7일에야 입소할 수 있었다. 김씨는 이후 시설에서 취업교육 상담도 받았다. 그러나 27일 외출을 나간 뒤 종적을 감췄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탈북 과정에서 몸에 밴 습성이 남아있어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씨처럼 목숨을 걸고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들이 방황하고 있다. 남한 정착에 어려움을 겪으며 떠돌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학교생활을 견디지 못해 범죄 세계로 빠져들고, 여성들은 범죄에 노출되기도 한다.
광진경찰서는 지난 19일 10대 청소년 절도단을 검거했다. 붙잡힌 9명 중엔 탈북자 안모(17)군도 있었다. 안군은 2003년 북한에 일부 가족을 남겨둔 채 어머니, 누나와 함께 국내에 입국했다. 안군은 일반 학교를 다녔지만 문화가 다른 학습내용에 힘들어했다. 영세민 아파트에서 어렵게 살던 안군은 비슷한 처지의 청소년들과 어울리다 3개월 전 가출해 결국 아파트 절도까지 가담하게 됐다.
지난 17일에는 북한 출신 다방 여종업원 김모(45)씨가 여관에 차 배달을 갔다 투숙객에게 목이 졸려 숨졌다. 경기도 화성의 한 다방에서 일하던 김씨는 성매매를 제안한 범인과 다투다 살해됐다.
김씨는 2002년 형제 3명과 함께 탈북해 중국과 캄보디아를 거쳐 2004년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남한 생활에 잘 적응했고 3년 전 탈북자 출신 남자를 만나 가정도 꾸렸다. 김씨는 그동안 미용일을 했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잠깐씩 다방일을 하고 있었다. 수원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인생 부활’을 꿈꿨던 그녀였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20∼50대 탈북 여성 1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26.4%(37명)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 과정이나 남한 정착 후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응답자도 각각 17.9%(25명), 12.1%(17명)에 달했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조요셉 연구부장은 “탈북자들은 남한과 완전히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며 “그들에 대한 지속적인 배려와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