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부활신앙의 근거
입력 2013-03-29 18:00
누가복음 24장 1∼10절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절의 주제는 ‘부활신앙’입니다. 그리고 부활절의 고민은 부활신앙의 근거에 대한 물음입니다. 오늘 본문은 안식 후 첫날 여인들이 예수님이 묻힌 무덤에 향품을 가지고 갔다가 빈 무덤을 확인하고 실망하는 내용입니다. 다만 여인들은 광채 나는 옷을 입은 두 사람을 보고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있을 때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는 말과, 주님께서 생전에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라면서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여인들은 주님의 부활을 눈으로 본 것도, 손으로 만져본 것도 아니며 오직 부활하셨다는 소리를 들은 게 전부였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부활사건을 증명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성경 어디에서도 그들이 만족할만한 부활신앙의 근거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가령 오늘 본문에서처럼 빈 무덤 이야기를 근거로 댈 수는 없었습니다. 성경에는 빈 무덤과 관련된 다른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제사장과 유대인 장로들의 입을 빌어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겨놨다고 군졸들에게 거짓을 꾸미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그런 식으로는 부활사건을 증명해낼 수 없다는 반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붙들 부활신앙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주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그대로 믿는 데 있습니다. 성경이 주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에 부활신앙의 근거를 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신앙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터를 둬야 함을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오래 전에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했고 성경이 주장하는 “하나님은 말씀이시다”라는 말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슬로건과 함께 교회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당신의 뜻과 목적을 선포하고 계심을 확실히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위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부활신앙도 예외가 아닙니다. 성경이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에 부활신앙의 터를 둬야 마땅합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이해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약속, 그리고 구원의 행동을 믿기 위해서 읽어야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만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해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항변합니다. 믿음과 이해 사이에서 어중간한 자세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이해되는 것이라면 구태여 믿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4세기의 교부 어거스틴은 “이해를 통해 믿으려 하지 말고, 믿음을 통해서 이해하라”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이해가 사람의 영역에 속한다면, 믿음은 하나님의 영역에 속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역에 해당되는 것은 믿음으로밖에는 이해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부활신앙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위에 굳게 서 있습니다. 이보다 더 분명한 근거는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고백이며 움직일 수 없는 성경의 중심 진리입니다.
박성완 목사(옥수동루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