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병드는 사회복지사] “우리도 인격체, 정도껏 부려야지”… 복지 손발 그들이 지쳐간다
입력 2013-03-29 17:43
경기도 용인과 성남에 이어 최근 울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30대 사회복지 공무원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복지 행정과 집행의 최일선에 선 사회복지사들이 나락으로 내몰리고 있다. 복지 예산 100조원 시대, 전국민 복지 구현의 첨병이어야 할 그들이 오히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부끄러운 현실이다. 안전행정부는 지난 28일 올 상·하반기 사회복지담당 공무원 2340명(신규 충원 1540명, 행정직 재배치 800명)을 충원하겠다고 밝혔으나 관련 단체와 일선 사회복지사들은 사회복지전달체계의 근본적 개편없이 단순 인원 보강은 ‘임시 방편’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일보 취재진이 접촉한 다수의 사회복지 공무원과 민간 복지사들도 소속 기관에 알려질까봐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리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그들의 현실과 문제점을 소상히 털어놨다. 하나같이 과중한 업무에 대한 부담감을 가장 먼저 토로했다.
지난해 4월 발령받은 전북 전주의 사회복지 공무원 B씨(33)는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0∼11시까지 근무하는게 일상처럼 됐다. 그가 맡은 업무 인원만 기초생활수급자 350가구와 장애인 2700명에 달한다. 필요에 따라 가정 방문을 나가야 하지만 낮에는 몰려드는 민원을 처리하느라 진을 빼기 일쑤다. 전북의 또 다른 사회복지공무원 O씨(43)는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e음)에 여러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데, 아침 9시부터 밀려드는 민원 때문에 대부분 일과가 끝난 후 서류나 공문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요즘은 무리가 와서 보약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B씨는 “일반 행정직은 일과가 끝나면 하루 일이 정리되는 반면 사회복지직의 경우 업무 시간 이후부터 진짜 업무가 시작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국 읍·면·동 행정기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공무원들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보훈처 등 13개 부처 292개 복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가 도입되면서 2010년 854만명이던 복지 수급 대상자는 지난해 944만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전국 3474개 읍·면·동 주민센터의 대부분(80.7%)은 복지 담당 공무원 숫자가 1∼2명에 불과하다. 올해 1월 대학졸업후 바로 사회복지공무원이 된 K씨(25·여)는 “영유아 무상보육이 이슈화됐을 때는 매일 밤 12시 넘어 퇴근했고, 무상보육 하자처리 신청 당시 혼자서 2000건의 업무를 담당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또 하나는 낮은 임금수준이다. 지난해 한국사회복지사협회 조사결과 이들의 평균 연봉 수준은 약 2754만원으로 중소기업 평균 임금(2500만원)을 약간 웃돌고, 대기업 평균 임금(5400만원)의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조사 응답자의 58.4%가 낮은 임금 수준과 열악한 근무환경 등으로 이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공무원은 시간외 근무수당이라도 보장돼 있지만 민간시설의 사회복지사들은 이마저도 제대로 받기 어려운 형편이다. 올해부터 초과근무수당제가 마련됐지만 재정이 열악한 기관과 센터 등에서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복지공무원의 경우 일반 행정직에 비해 승진 문이 좁은 것도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사회복지직은 소수직렬이라 자리가 나면 바로바로 진급이 가능한 행정직렬에 비해 승진이 느린편이다.
인간적 모멸감이나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근무환경도 문제다. 특히 전체 60∼70%를 차지하는 여성 사회복지사의 경우 민원인들로부터 욕설과 협박, 폭행, 성희롱 등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데다 어려운 형편이나 처지의 사람들을 상대로 상담을 하다 보니 우울증 등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사회복지사협회가 발표한 ‘사회복지사의 클라이언트 폭력 피해 실태 및 안전 방안 연구’에 따르면 사회복지 공무원 중 폭력을 직접 당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222명 중 95%(211명)에 달했다. 경기도의 한 복지관에서 근무하는 K씨(33·여)는 “특히 남자 어르신들이 음주 후에 불쾌한 장난을 하거나 침대에 잠깐 와서 누워보라는 식의 얘기를 해 놀라기도 한다”며 “금전적 처우도 중요하지만 인간적 대우를 못 받는다는 것은 복지사들의 사기 자체를 꺾는 일”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전수민·정건희 수습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