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한다는데… “희귀질환 치료제부터 건보 적용을”
입력 2013-03-28 18:14 수정 2013-03-28 19:06
2010년 초 몸이 점점 마비되는 희귀·난치병 ‘다발성경화증’이 발병한 조모(35)씨는 유일한 치료약인 ‘인터페론 주사제’를 써 왔지만 더 이상 약발이 먹히지 않아 야뇨증 등 합병증까지 겪고 있다. 문제는 인터페론이 듣지 않거나 주사에 거부감이 있는 환자들을 위한 먹는 신약 ‘길레니아’가 2011년 6월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약처)의 국내 시판 허가가 났음에도 건강보험이 안돼 고스란히 비싼 약값을 내고 써야 한다는 것이다. 보험이 되는 인터페론은 월 13만원을 내면 되지만 이 약은 월 400여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즉 약이 있어도 환자들에겐 ‘그림의 떡’인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해 급여 심사를 벌였지만 비용 효과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비급여를 결정했다. 국내 다발성경화증 환자는 약 2300명으로 파악되며 그중 20% 정도가 기존 치료제가 듣지 않거나 부작용 등으로 대체 약을 필요로 하는 환자다. 2년여간 심평원 등과 보험 적용을 두고 힘겨운 싸움을 벌여온 아버지 조한각(65)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올해 다시 심평원과 국회 등에 청원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립암센터 신경과 김호진 박사는 “해외에서는 다발성경화증의 증상 단계별로 다양한 치료제가 사용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초기 환자를 치료하는 1차 치료제뿐이어서 여기에 실패하면 쓸 수 있는 약이 없어 대체 약에 대한 보험 급여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상황의 희귀질환 치료제는 길레니아를 비롯해 다발성골수종 치료제 ‘레블리미드(2011년 4월 식약청 허가)’, 불응성 및 재발성 소아 급성림프구성 백혈병 치료제 ‘에볼트라(2011년 4월)’, ALK 양성 비소세포 폐암 치료제 ‘잴코리(2011년 12월)’ 등이 있다.
정부가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질환) 보장성 강화책을 마련 중인 상황에서 최신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건보 적용을 우선적으로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특성상 환자 수가 적어 비용 효과성 평가를 위한 임상 근거가 부족할 수밖에 없어 이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고 대체 치료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국내에 도입된 신약이라도 하루 빨리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건보 적용이 늦어지면서 일부 환자들은 치료 시기를 놓쳐 병이 악화되거나 사망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다발성골수종환우회 관계자는 “월 510만원 정도 드는 레블리미드가 보험 적용되는 것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 환자가 최근까지 10여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국내 다발성골수종 환자 5000∼7000명 중 약 10%는 기존 치료제(2가지)에 내성이 있거나 부작용 등으로 레블리미드 사용이 절실한 환자로 파악된다.
보건복지부는 28일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를 위해 4월 한 달간 현장 간담회 등을 통한 실태 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29일 복지부와 첫 간담회를 갖는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신현민 회장은 “약이 들어와 있는데도 보험 비적용으로 접근성 보장이 안 되는 문제 해결이 가장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