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용상] 묻지도 않은 수사기밀 밝힌 경찰

입력 2013-03-28 17:58

27일 오후 10시10분 경찰청 기자실이 갑자기 뒤숭숭해졌다. 사회 지도층 성접대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사건 관련자 10여명에 대해 출국금지를 신청했다는 얘기가 들려 왔다. 소식이 전해진 경위는 이렇다.

기자들은 수사팀이 있는 경찰청 북관 7층 특수수사과 사무실 앞에서 ‘뻗치기’를 하고 있었다. 누가 소환되는지, 어떤 수사가 진행 중인지 취재하느라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에게 수사팀 소속 간부급 경찰관이 사무실을 나서며 말했다.

“김 선생을 포함해 10여명 출금(출국금지) 신청했어요.”

‘김 선생’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말한다. 기자들은 당황했다. 김 전 차관 출국금지를 신청했다는 사실보다 이를 경찰이 스스로 밝혔다는 게 더 놀라웠다. 출국금지는 피의자로 지목되거나 수사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의 해외 도피를 막기 위한 조치다. 법무부가 출국금지 신청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경찰이 공개한다는 건 피의자에게 도망가라고 알려주는 것과 다름없다.

출국금지 신청 사실이 전해지게 된 과정도 놀랍다. 경찰은 지난 18일 내사에 착수하면서 “언론 창구를 특수수사과장으로 단일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목이 집중된 사건인 만큼 취재 과열에 따른 부정확한 보도를 막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한 경찰관의 갑작스런 ‘출국금지 공개’로 이 원칙도 무너졌다. 게다가 특수수사과장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묻지도 않은 사실을 경찰이 스스로 공개해놓고 다른 경찰은 발뺌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성접대 동영상 분석 결과를 받지 못했다”는 거짓말을 한 지 불과 이틀 만이다.

그날 출국금지 요청 사실 공개 전까지 상당수 기자들은 무리한 접근으로 난항을 겪게 된 경찰수사 상황을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 중이었다. 그러나 28일자 대부분 신문에는 김학의 등 10여명 출국금지란 기사가 실렸다. 경찰이 왜 갑자기 ‘7층 복도’에서 출국금지 얘기를 불쑥 꺼냈는지 짐작은 된다.

사회부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