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로마사의 고전, 159년 만에 한국어판 빛 보다
						입력 2013-03-28 17:19  
					
				몸젠의 로마사/테오도르 몸젠/푸른역사
로마사 연구를 집대성한 근·현대 학자의 대표작으론 두 가지가 꼽힌다. 영국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이 쓴 ‘로마제국쇠망사’, 그리고 독일 테오도르 몸젠(1817∼1903)의 저작인 ‘로마사’가 그것이다.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는 국내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됐다. 청소년 버전까지 나와 있을 정도다.
그런데 몸젠의 ‘로마사’는 1854년 첫 책이 독일에서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15개 국어로 번역되는 등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지만 국내에서는 번역서가 나오지 못했다. ‘서양 인문학 전공자들의 필독서’ ‘역사적 저작들의 위대한 고전 중 하나’ 등의 수식어가 붙은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지 159년 만에 한국도 번역 국가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역사의 대중화를 내건 출판사 푸른역사가 ‘몸젠의 로마사’라는 타이틀을 달아 원서 자체를 번역 출간한 것이다. 이제 첫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몸젠의 로마사’는 처음 세 권으로 나뉘어 출판됐는데, 제1권(1·2·3책) 1854년, 제2권(4책) 1855년, 제3권(5책) 1856년 등으로 각각 나왔다. 이후 몸젠은 황제정 시대의 경제를 다룬 제4권과 카이사르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까지의 로마 속주를 다룬 제5권을 기획했다. 하지만 제5권이 1885년 먼저 출간된 후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제4권은 빛을 보지 못했다.
몸젠은 로마사를 두 개로 구분한다. 이탈리아가 통일되기까지 내부 역사, 그리고 이탈리아가 세계를 지배하기까지의 역사가 그것이다. 제4권(8책)이 빠지면서 후자 부분은 미완의 작업이 돼 버린 셈이 됐다.
푸른역사에서는 1·2·3·4·5책+8책으로 된 몸젠의 로마사를 10권으로 쪼개 10년에 걸쳐 내기로 하면서 이번에 첫 시도로 ‘몸젠의 로마사 제1권-로마 왕정의 철폐까지’를 낸 것이다. 책은 이탈리아 반도에 이탈리아어계 민족이 정착해 로마가 시작되는 과정에서 출발해 국가의 토대인 가족, 국가 최고 권력자인 왕, 시민과 원로원 등 로마의 제도적 구성 요소를 통해 로마가 국가 기반을 갖추고 발전해 가는 과정을 살핀다. 법, 종교, 농업·상업·무역, 측량과 문자, 예술 등도 찬찬히 다룬다. 말하자면 몸젠은 로마법 전문가답게 제도의 관점에서 로마 형성사를 들여다본 것이다.
가장 흥미 있는 대목은 로마시대의 6대 왕인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개혁을 통해 로마의 시민권이 확대돼 가는 과정일 것이다. 제도 개혁을 통해 국가 한계를 뚫는 리더의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존망은 시민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과 비시민의 구별은 분명했지만, 시민은 군역의 의무를 졌기 때문이다. 시민은 병사였던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의무를 수행하고 공역을 부담할 뿐 아니라 행정에도 참여했다. 시민 모임인 민회는 법의 관점에서는 왕보다 상위에 위치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겼다. 전쟁을 시민들만이 부담하면서 시민권자의 후손은 점차 줄어든 반면, 외국에서 망명한 영주민이나 노예에서 풀려난 자유인 등 피호민들은 전쟁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면서 과실은 누렸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왕은 이에 군역을 시민이 아닌 토지 소유자들에게, 즉 시민이든 영주민이든 무관하게 부과하는 군대개혁을 실시했다. 로마의 시민이 확대되는 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 공역자인 김남우씨는 “군대 정비와 토지 개혁을 통해 시민의 확대는 이후 로마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기반이 됐다”고 해석했다.
역사의 기술에서 몸젠은 미사여구를 배제하고 명확한 사실관계의 전달에 초점을 맞춘다. 문장은 쉬우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이 책이 1902년 독일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안겼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김씨는 “1권은 다소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2권부터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문학적 교양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몸젠의 로마사 번역 작업은 1990년대 중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가 히트를 친 후 국내 몇몇 출판사에서 시도했지만 로마법, 라틴어 등 여러 분야의 전문적 지식을 아울러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좌절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다 이번에 문학, 종교, 법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합심해서 번역해 인문 출판 분야에 한 획을 긋게 된 것이다. 김남우·김동훈·성중모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