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고승욱] 반값 등록금은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13-03-28 17:34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흔들리는 정책… 반드시 이루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평소 산책길로 이용하는 집 근처 대학 캠퍼스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물론 꽃은 학생들의 얼굴에 벌써부터 활짝 펴 있었다. 이달 초에는 한눈으로 봐도 신입생 티가 나는 학생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대학생활에 익숙해진 듯하다. 삼삼오오 함께 다니며 터트리는 웃음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발랄하고 활기 넘치는 캠퍼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울한 구석이 적지 않다. 유례없는 청년실업난에 입학하면서 졸업 후를 걱정하는 게 요즘 대학생이라지만 현실은 훨씬 가혹하다. 미래가 아니라 당장이 힘들다. 무엇보다 등록금 부담이 크다. 돈이 없어 등록을 포기한 학생은 말할 것도 없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은 새 학기 등록을 마치자마자 다음 학기 등록금을 걱정한다. 스스로 등록금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는 학생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고생하는 부모 얼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실 1년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돈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래서 반값 등록금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이구동성으로 약속했던 반값 등록금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지난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물론이고 박근혜 대통령도 “연간 14조원인 대학등록금 부담을 7조원 정도로 줄여드려야 한다”고 약속했다.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예산 182억원을 투입하면서 막연했던 기대는 가능성 높은 대안으로 바뀌었다. 등록금 때문에 고민하던 사람들이 “이제 등록금 걱정은 덜 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실 박 대통령의 ‘소득 연계 맞춤형 반값 등록금’은 등록금 자체를 반으로 내리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등록금은 그대로 두되 장학금을 크게 늘려 실질적인 반값을 달성하겠다는 뜻이다. 2014년부터 소득이 하위 20% 이하인 가구의 학생에게는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원하고 나머지는 소득에 따라 일부를 장학금으로 준다는 것이 골자다. 이를 두고 반값 등록금이 가져올 여러 부작용을 걱정했던 사람들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문제는 새 정부의 의지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어제 박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며 “내년에 대학 등록금 부담을 절반 수준으로 경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더 이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기본계획을 연말까지 마련하겠다는 것 외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40대 국정과제에서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 때문에 반값 등록금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렸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년 7조원의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논의 역시 실종됐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4조원을 정부재정으로, 2조원은 대학별 자체 장학금으로, 1조원은 대학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자체 노력으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달 당선인 신분으로 인수위가 주최한 국정과제토론회에 참석한 박 대통령이 대학의 회계투명성과 책무 강화를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학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토론회가 끝난 지 4일 만에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정기총회에서는 정부가 고등교육 예산을 늘려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대교협은 전국 201개 4년제 대학 총장들의 모임이다. 실제로 대학이 등록금을 내리거나 장학금을 늘리는 만큼 정부가 지원하는 내용의 ‘국가장학금 Ⅱ유형’의 2012∼2013년 예산집행률은 55.8%에 불과했다. 대학의 자구노력을 전제로 짜여진 반값 등록금 정책이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하다. 기대가 한껏 높아진 만큼 무산되거나 늦춰진다면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다. 2011년 반값 등록금 촛불시위가 재연될 수도 있다. 새 정부가 어서 빨리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