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누르자말에게서 편지가 왔어요!”
입력 2013-03-28 19:06
봉투에 적힌 빨간 글씨를 보는 순간 편지를 뜯는 손가락이 살짝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떨림. ‘설렘’이라고 한마디로 뭉뚱그리기에는 어딘가 아까운 그런 기분이었다. 봉투 한 귀퉁이를 뜯어내자 크레용 냄새가 새어나왔다. 편지를 펼치자 분홍색 튤립과 이름 모를 귤색 꽃, 그리고 하늘색 사다리가 보였다. 글이 서툰 아이가 그림으로 첫인사를 보내온 것이다. 무심결에 그림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튤립 줄기의 분홍색 선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살짝 번진 분홍색 꽃잎을 코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아봤다. 크레용 냄새가 꽤 진하게 나는 것이 신기해서 몇 번씩 들이마셨다. 어느 순간 마치 코앞에 있는 듯 아이 모습이 느껴졌다. 편지를 쥔 두 손에 덜컥 무게감이 전해져 왔다.
누르자말 후끄. 작년 말부터 개인후원을 시작한 열 살짜리 사내아이. 송아지같이 큰 눈에 짙은 쌍꺼풀, 단정한 이마에 반듯한 인상을 가진 아이. 잔뜩 긴장해서 눈코입이 다 경직되어 있던 사진 속의 아이를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별 느낌이 없었다. 애어른 느낌의 동남아시아 어린이, 책읽기와 국어시간을 좋아하는 차분한 어린이. 그게 다였다. 그렇게 흘리듯이 무심히 봤던 아이가 보낸 그림 한 장이 이렇게 크고 무겁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아이가 사는 곳은 인구의 절반이 빈곤층인 나라, 방글라데시다. 5세 이하 어린이 2명 중 1명이 영양실조이고, 노동착취와 조혼 등으로 아이들이 시들어가는 나라, 사이클론과 토네이도가 호시탐탐 목숨을 노리는 나라다. 누르자말의 현실은 그랬다. 그 거대한 생존의 벽 앞에서 정말 너무도 속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의 손을 잡아버린 것이다. 큰돈 드는 것도 아니니 할 수 있을 때까지만 하자, 연말 분위기에 취해 휘둘리듯 자선 물결에 뛰어들었다.
그 무심한 손을 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잡았을까. 아이의 마음을 그려볼수록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리고 생각들이 쏟아졌다. 왜 도와야 하지? 언제까지 해야 하지? 감정의 사치인 건 아닐까?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정리되었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따지고 망설이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더 큰 사치다. 하지 않아도 될 때까지, 아이가 내 손을 놓을 때까지 잡아주면 되는 거다’라고. 하기 전에는 몰랐던 나눔이라는 약속의 무게. 누르자말의 편지가 가르쳐주었다. 비록 어설프게 시작된 나눔이지만 멋진 인연으로 자랄 것이라 믿는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