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애슐리 박 (11·끝) ‘온가족 열방 다니며 기도하라’ 소명 기쁘게 순종

입력 2013-03-28 17:16


‘온 가족이 열방을 다니며 기도하라.’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 미국의 집을 당분간 떠나게 되었는데, 당분간이라고 생각한 기간이 벌써 1년9개월째 한국에서 지내고 있다. ‘초가삼간이라도 내 집이 좋다’는 옛말이 있지만, 한국에서 다섯 식구가 지내는 동안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집을 제공해 주셔서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김포의 박 집사님 내외분의 아파트는 손님인 우리 식구가 거의 독차지하다시피하며 친정집보다 더 편하게 지냈다. 충남 아산의 기도의 집에서는 밤 10시가 좀 지나면 목사님이 우리 세 아이들에게 맛난 밤참을 사주셨던 것이 생각난다. 수양관에서는 담당 장로님이 미국에서 온 우리 아이들을 위해 소시지 반찬을 빠뜨리지 말라고 주방에 말씀하시기도 했다. 우리보다 더 우리의 형편을 걱정해 주시는 많은 분들, 그들의 배려로 이제 한국 전체가 우리에게는 ‘스위트 홈’이 됐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우리 가족은 중요한 사명을 깨달았다. 특히 막내 조셉은 “기뻐하라, 무조건!”이라며 우리 킹덤 패밀리는 늘 기뻐해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 크리스토퍼는 혹시 누가 기뻐하지 않는지 늘 식구들의 얼굴을 습관적으로 살피곤 한다. 무조건 기뻐하기로 결단한 마음은 모든 것을 기쁨으로 변화시키는 열쇠가 됐다.

수양관에서 지내던 지난해 어느 날 아침, 급히 서울에 갈 일이 생겼다. 수양관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러 나가기 위해서는 하루 두 차례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버스를 기다리다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간혹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들었다. 2∼3대가 그냥 지나갔다. 중형 트럭이 다가오기에 손을 들었더니 감사하게도 속도를 줄이며 앞에 섰다. “이 차를 타시려고요? 똥차인데….” 얻어 타는 나보다 더 미안한 표정의 똥차트럭 아저씨. 짧은 거리를 달리는 동안 나는 그 똥차트럭을 운전하는 아저씨가 ‘선한 사마리아인’임을 깨달았다. 벤츠를 탄 것보다 더 기쁘고 감사했다.

뜻하지 않게 한국에 오래 머물게 되어 하나님께 질문했다. ‘왜 우리 가족이 미국의 집을 떠나 한국에 있나요?’ 대답 대신 주님은 내가 수년 전에 잠시 스치듯 드렸던 기도를 생각나게 하셨다. ‘당신이 영광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그 자리에 나도 함께 있고 싶어요. 주님, 꼭 불러 주세요.’ 나도 잊고 있었던 그 기도에 하나님은 신실하게 응답하신 것이다. 나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에는 하나님이 일하시고 있는 흔적이 너무도 선명하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4∼5) 하나님은 우리 가족이 한국을 향해 이 마음을 갖기 원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선하게 받을 수 있도록, 일찌감치 무조건 기뻐하는 연습을 시키셨나보다.

어느 부활절 아침 이 땅을 밟은 언더우드 선교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 육의 눈이 아닌 영의 눈으로 바라보는 믿음의 순종을 했다. 그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은 이제 2013년 부활절을 기다리는 이 아줌마가 그냥 맨눈으로도 너무도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하신다. 5000년 동안 묻혀 있던 작은 보석이 이제 드러나 온 세상을 밝히고 축복하는 모습, 그것을 바라보며 나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