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단골 후보 페터 한트케의 자전적 소설 ‘반복’ 국내 첫 소개

입력 2013-03-28 17:31


200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스트리아의 페미니즘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노벨문학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페터 한트케다”라고 추켜세웠다. 페터 한트케(71)의 자전적 소설 ‘반복’(종문화사)이 윤용호(70) 고려대 명예교수에 의해 국내 초역됐다. 한트케 전문가인 윤 교수가 ‘독특한 언어관을 가진 작가’라고 규정할 만큼 ‘반복’의 구성과 문체는 특이하다.

한트케의 어머니 마리아 한트케(1920∼1971)는 1920년 이래 오스트리아 영토인 옛 슬로베니아 케른텐 태생이고 계부는 독일 태생이다. 어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케른텐에 주둔했던 독일 병사와 사랑에 빠져 한트케를 잉태했으나 그 병사가 유부남이어서 결혼을 못한다. 그러다 그녀에게 마음을 뺏긴 또 다른 독일 병사 브루노 한트케와 내키지 않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한트케는 소설에서 어머니는 독일 출신, 아버지는 슬로베니아 출신으로 태생을 바꿔버린다. 이는 독일인인 친부나 계부에게 슬로베니아 혈통을 부여함으로써 가해국 독일에 반발하는 작가의 내면을 드러낸 것이다.

소설은 1940년생인 필립 코발이 2차 대전 당시 실종된 형을 찾아나서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작품에서 형의 나이는 실제 한트케의 어머니보다 한 살이 많은 1919년생이다. 자전적 소설임에도 이런 인위적인 설정을 한 것은 그렇게 해야만 한트케가 말하려는 주제의 리얼리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는 이렇듯 세대의 배열을 무시한 채 밑에서부터 역류하는 가역반응일 수도 있다.

오스트리아 남쪽 링켄베르크 마을에서 독일어를 사용하며 자란 형은 17세에 슬로베니아의 마리보르 농업학교에 가서 과수재배 교육을 받으며 슬로베니아어를 익히게 된다. 이후 집에 돌아온 그는 1939년 독일군에 입대하지만 탈영병이 돼 슬로베니아로 돌아오고 이내 파시즘에 저항하는 빨치산 대원이 됐다는 소식과 함께 실종되고 만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형이지만 필립은 형에 대해 너무 많이 듣고 자랐기 때문에 형은 그에게 영웅처럼 각인된다. 필립의 진술로 서서히 밝혀지는 형의 실체는 마치 전쟁의 포화 속에서 안개가 걷히며 죽은 자와 산 자가 드러나는 전장의 숨죽인 아침과 같다.

“그리고 나 자신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마침 어머니가 슬로베니아어를 아주 약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언어는 형에게 이르러서야 마르부르크에서 보내 온 첫 번째 편지에서 ‘모국어’로 불렸다. 그리고 그는 그 단어에 ‘우리’를 맨 앞에 붙였다(‘우리 모국어’). 그리고 첨가했다. ‘우리가 무엇이든 그것이 우리다. 그리고 아무도 우리를 독일인으로 규정할 수 없다’.”(140쪽)

형은 마리보르 농업학교를 다니는 동안 17세기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당한 농부 그레고르 코발의 고향을 여행하고 돌아온 직후 집안의 조상을 그레고르 코발로 결정해버린다. 마찬가지로 필립은 형이 남긴 작업노트와 아버지가 출생한 해에 나온 슬로베니아-독일어 사전을 가지고 슬로베니아로 여행을 떠난다. 아버지와 형을 연상시키는 두 권의 책은 성장기의 필립에게 큰 스승의 역할을 한다. 마침내 필립은 어느 궁핍한 마을 교회 헌당식 축제 때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을 두고 서로 마주 서 있는 형과 일치감을 느낀다.

“우리는 움직이지 않고 서로 간격을 두고, 도달하기 어렵게, 말을 붙이기 어렵게, 슬픔, 냉정함, 경솔함, 그리고 고독 속에서 하나가 되어 마주 서 있었다.”(244쪽)

정확한 번역을 위해 한트케의 김나지움(독일 중등교육기관) 선생이자 이 소설의 등장인물이기도 한 라인하르트 무자르(86)와 서신을 주고받은 윤 교수는 “형이 갔던 코스를 동생이 뒤따라갔다는 의미에서 제목이 ‘반복’”이라며 “독일에 대한 한트케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인해 2006년 뒤셀도르프 시가 주관하는 하인리히 하이네 수상자로 그가 지명됐지만 시의원들이 심사를 거부하는 바람에 수상이 무산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듬해 뒤셀도르프 시의회의 이러한 행위를 예술의 자유를 공격한 것으로 간주한 베를린 앙상블 단원들이 5만 유로(약 7000만원)의 상금을 모아 한트케에게 ‘베를린의 하인리히 하이네상’을 수여했으며 한트케는 코소보에 있는 세르비아 마을 아이들을 위해 상금 전액을 기부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