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경제 양성화 선전포고] 대기업-中企 동반성장 위해 ‘불공정 관행 철폐’ 의지 반영
입력 2013-03-27 22:10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7일 해운업계의 납품가 후려치기 관행을 비판한 것은 현 정부가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을 구호성 공약으로 놔두지만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윤 장관은 최근 대기업·협력업체 간 불공정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뜻을 잇따라 표출하고 있다. 취임사에서는 “동반성장의 문화와 관행이 기업 현장에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취임 직후인 지난달 14일에도 현대·기아자동차 협력사 합동 채용박람회장을 찾아 “대기업 구매부가 납품가격을 결정하고 나서 재무팀 등이 다시 가격을 삭감하는 사례가 있다”고 꼬집었다.
해운업계 비판도 그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산업부 산하인 한국전력공사의 발전 자회사들은 지난달 현대상선, STX팬오션, 한진해운, SK해운 등 해운회사 4곳과 18년짜리 유연탄 운송계약을 맺으면서 15만t 규모의 벌크선 9척(약 4500억원 규모)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세계적인 불황을 겪고 있는 중소 조선사와 납품업체에 일감을 마련해주겠다는 취지였다.
윤 장관은 당시 산업부의 전신인 지식경제부 차관으로 계약 체결을 주도했다. 그는 경총 포럼에서 “우리가 석탄 공동구매를 하겠다고 한 것은 일차적으로 중소 조선소를 살리려는 것이었다”며 “체결식을 할 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정부가 결단한 것이니 가격을 잘 쳐 달라’고 선사에 부탁했는데 갑을 관계가 바뀌니 달라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장관의 대기업 비판 발언은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관료 출신인 윤 장관은 그동안 현안에 입장이 뚜렷한 편이 아니었다. 장관 후보로 내정된 뒤부터 동반성장 관련 목소리를 높여왔다. 따라서 윤 장관이 ‘코드 맞추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당분간 이런 행보는 계속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공개적 의견 표명은 자제하고 있지만 불만어린 표정이다. 특히 해운업계는 발끈했다. 아직 조선소와 가격 협상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가격 후려치기’를 할 수 있겠느냐며 들끓는 분위기다.
한 해운기업 관계자는 “조선소로부터 예정 가격만 받았고 아직 네고(협상)를 시작하지도 않았다”며 “대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업계 전체가 불황인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을 뿐 영세하지 않은 조선사의 처지만 얘기한 것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