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도 안지킨 경찰 ‘지도층 성접대’ 수사 난관… ‘의혹’만 갖고 덤벼 캘수록 미궁
입력 2013-03-27 18:29 수정 2013-03-27 22:19
사회 지도층 성접대 의혹을 수사하던 경찰이 난관에 봉착했다. 초유의 관심사였던 성접대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채 수사가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사퇴할 정도로 파장이 큰 사건이었지만 경찰 수사는 시작부터 문제가 많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확인 의혹에 덜컥 ‘내사 착수’ 발표=경찰은 지난 18일 이 사건에 대한 내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경찰이 내사에 착수하면서 언론에 공개하는 건 이례적이다. 경찰은 당시 “신속하게 국민적 의혹을 풀겠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의혹의 핵심은 ‘성접대 여부’였다. 발표를 접한 국민들은 성접대 의혹이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였다. 의혹에 휘말렸던 김 전 차관은 전면 부인하면서도 6일 만에 전격 사퇴했다. 경찰은 내사 착수 3일 만에 다시 ‘본격 수사’로 전환했다. 고위 공직자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여성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는 범죄 혐의가 있을 때 하는 게 수사기관의 상식이다. 단순 의혹만으로 수사에 착수할 수는 없다. 본격 수사 1주일이 되도록 고위층 성접대가 과연 있었는지, 건설업자가 얼마나 대가를 받았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성접대 동영상’에 좌충우돌=성접대 의혹의 핵심 증거는 유력 인사가 등장한다던 동영상이다. 동영상을 경찰에 건넨 여성 사업가 A씨는 “이 동영상에 김 전 차관이 등장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영상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여론의 관심도 쏠렸다.
이 영상은 화질이 나빠 등장인물의 신원 확인이 어려운 상태였다. 경찰은 동영상 분석 및 검증 작업도 하기 전에 내사 발표와 본격 수사 착수를 강행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동영상 분석을 의뢰한 것도 관련자 출국금지를 위해 검찰에 보냈다가 “화질이 너무 나쁘니 국과수 도움을 받으라”는 지휘를 받고나서였다. 국과수는 ‘해상도가 낮아 (김 전 차관인지) 동일성 판단은 곤란하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경찰의 의욕이 앞선 것이다. 경찰은 원본 동영상 및 다른 성접대 동영상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계좌추적·압수수색 없는 비리수사…검찰 지휘 안 받겠다?=경찰은 수사의 핵심이 성접대가 아니라 윤씨의 불법·비리 여부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 부분도 진척이 더디다. 내사 착수 열흘이 지났지만 아직 윤씨의 돈거래를 살펴보는 계좌추적이나 압수수색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 압수수색 영장 없이 강원도 별장에 갔다가 문이 잠겨 있다며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이는 검찰 지휘를 받지 않으려는 의도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경찰은 지금까지 출국금지 외에는 검찰 지휘를 한번도 받지 않았다.
◇검찰 “경찰이 좀 이상하다”…부글부글=검찰에선 경찰의 수사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경찰이 무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26일자에 경찰 고위 관계자가 지난 1월 한 호텔에서 자사 기자를 만나 성접대 동영상을 보여주며 “대형 게이트로 번질 수 있는 지저분한 사건이 있다. 확실한 증거를 모으고 있다. 늦어도 3월 10일 전에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 무렵 검찰총장 경찰청장 인사가 날 텐데, 그 인사에서 (김학의 전 차관이) 옷을 벗게 되면 파괴력이 떨어질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한 검찰 간부는 “경찰이 물밑에서 확인되지 않은 풍문을 흘리면서 검찰 흠집내기를 한 것 아니냐”며 “지금 수사로 봐서는 결국 ‘사건 실체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날 것”이라고 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