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직 산업장관, “中企지원사업마저 대기업이 가격 후려치더라”

입력 2013-03-27 18:10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대기업의 ‘납품가 후려치기’ 관행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난 25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대기업·협력업체 간 불공정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밝힌 뒤 나온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윤 장관은 납품가를 후려치기한 기업을 사실상 지목했다.

윤 장관은 27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186회 경총포럼 강연에서 한국전력공사의 발전 자회사와 주요 해운사가 지난달 맺은 유연탄 수송 장기용선 계약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계약서) 서명이 끝나고 나니 선사가 (가격) 후려치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전 측은 현대상선, STX팬오션, 한진해운, SK해운 등 해운사 4곳에 발전에 필요한 유연탄을 18년 동안 나르도록 하는 계약을 맺으면서 15만t 규모의 벌크선 9척(약 4500억원 규모)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세계적인 불황을 겪고 있는 중소 조선사와 납품 업체에 일감을 마련해 주겠다는 취지였다.

윤 장관은 “우리가 석탄 공동구매를 하겠다고 한 것은 일차적으로 중소 조선소를 살리려는 것이었다”며 “체결식을 할 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정부가 결단한 것이니 가격을 잘 쳐 달라’고 선사에 부탁했는데 갑을 관계가 바뀌니 달라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매출 1조원대 대기업이 입찰을 실시했는데 재경부서에서 실적을 내야 한다는 이유로 입찰금의 5%를 깎아버렸다고 한다”며 “미국이라면 명백히 징벌적 배상감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현재 국내 거래관행이 아직도 시장경제 질서를 안 따르고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라며 “제값을 주고 거래하는 것은 시장경제 질서를 제대로 지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은 공개적 의견 표명은 자제하고 있지만 불만어린 표정이다. 투자 활성화 등 전통적 산업 담당 부처의 역할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따라하기 같다는 평도 있다.

특히 해운업계는 발끈했다. 아직 조선소와 가격 협상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가격 후려치기’를 할 수 있겠느냐며 들끓는 분위기다.

한 해운기업 관계자는 “조선소로부터 예정가격만 받았고 아직 네고(협상)를 시작하지도 않았다”며 “대체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업계 전체가 불황인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을 뿐 영세하지 않은 조선사의 처지만 얘기한 것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새 정부의 경제살리기 정책에 필요한 대기업의 협조를 얻어내려는 ‘군기 잡기’라는 해석도 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