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진완’ 십장생 자수첩 경매 나온다… 中 황제도 반한 진주 강씨 며느리 자수 솜씨
입력 2013-03-27 17:57 수정 2013-03-27 22:05
1605년(조선 선조 38년)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간 문신 강첨(姜籤·1559∼1611)은 중국 황제로부터 비단 두 필을 하사받는다. 강첨이 입은 조복(朝服)에 수놓인 흉배(관복의 가슴과 등에 장식된 표장)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황제 신종은 누가 만들었느냐고 묻는다. 강첨이 며느리 김씨라고 대답하자 황제는 비단을 내리며 흉배를 부탁한다. 비단을 받아온 강첨은 며느리에게 주어 네 폭의 십장생 수를 놓게 한 뒤 두 폭은 이듬해 중국 황제에게 보내고, 나머지 두 폭은 집안 보물로 삼았다.
며느리는 퇴계 이황의 제자인 안동 김씨 김충남의 딸이며, 부군은 강첨의 큰아들 강학년(1585∼1647)이다. 강첨은 십장생 수를 놓은 붉은 비단 위에 글씨를 쓸 수 있게 노란 비단을 별도로 붙여 첩을 만들고 겉표지에 ‘전가진완(傳家珍玩)’이라는 제목을 썼다. 진주 강씨 집안에 영원히 전해져 보배로 여기라는 뜻이다. 강학년은 이 자수첩을 넷째아들 강옥(1631∼1688)에게 준다는 유서를 남겨 이 집안에 지금까지 전해진다.
‘전가진완’이 다음달 10일 고미술품 경매 회사 옥션단의 경매에 나온다. 27일 옥션단에 따르면 1606년 제작된 이 자수첩 한 폭은 자수 부분과 발문 등을 포함해 전체 26×41㎝ 크기로 돼 있다. 사슴과 학, 거북이 그려져 있다. 자수 유물 중 제작 연도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현전하는 자수 작품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 말 사계분경도(四季盆景圖) 4폭 병풍이 있지만 제작자 미상이다. 조선시대 신사임당(1504∼1551)의 초충도(草蟲圖) 자수가 있지만 그가 그린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허동화 자수박물관장은 “보통 자수는 제작자 서명이 없다”며 “제작 시기와 제작자가 분명하다면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전가진완’은 후대로 가면서 실학자 이익(1681∼1763)과 문인 강세황(1713∼1791)의 발문이 곁들여져 진가를 높여준다. 강옥의 아들 강세정은 1729년 당대 실학의 거두 이익에게 발문을 받는다. 또 세월이 흐른 뒤 강세정 손자인 강원복은 당대 최고의 서화 감식가로 이름을 날리던 집안어른 표암 강세황을 찾아가 십장생 자수 그림 위에 비워 놓았던 노란 비단에 발문을 받는다.
전가진완은 1915년 조선총독부가 박람회인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할 때 공개되면서 주목받기도 했다. 최근 KBS 1TV ‘TV쇼 진품명품’에서 현 소유자인 진주 강씨 후손이 감정을 의뢰하기도 했는데, 개인 사정으로 옥션단에 내놓게 됐다.
옥션단 김영복 대표는 “크기는 작지만 작품성이 아주 뛰어나고 이처럼 스토리텔링이 되는 예술작품도 드물어 보물로 지정해도 손색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낙찰 추정가는 1억∼2억원. 현재 비슷한 크기의 김홍도 정선 심사정 등의 회화 작품도 1억∼2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