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내 최고 기타리스트 최희선 “기타에 미친 행복한 사람”
입력 2013-03-27 17:13
무대의 주인공은 언제나 가수의 몫이다. 하지만 가수의 힘만으로 공연이 완성될 순 없다. 스포트라이트에선 비껴서 있지만 공연 이면엔 콘서트를 진두지휘하는 연출가와 가수의 노래를 조력하는 연주자가 있다. 이들이 없다면 그 어떤 출중한 실력의 가수도 객석을 휘어잡긴 힘들다. 공연 연출가 이종일(52), 기타리스트 최희선(52)은 각자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가요계 숨은 거물들이다. 지난 25일 서울 대흥동 한 카페에서 이종일을, 같은 날 동교동 한 스튜디오에서 최희선을 만났다.
최희선은 우리나라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다. 1980년대나 90년대 초 발매된 국내 상당수 가요 음반 속지엔 ‘최희선’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당시 발표된 음반 절반엔 최희선의 편곡이나 연주가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최희선을 소개할 때 맨 먼저 거론하게 되는 건 역시 가수 조용필의 밴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다. 93년 조용필에 발탁돼 팀에 합류한 최희선은 이 밴드의 리더로 20년 동안 활약해왔다. 완벽주의자로 정평이 나 있는 조용필과 20년간 함께했다는 것 자체가 그의 실력을 방증한다.
“용필이형 콘서트 마치고 집에 와서 잠을 자다 새벽에 문득 깰 때가 있어요. 그러면 갑자기 전날 제가 무대에서 연주한 소리들이 생각나요. 성에 안 찼던 연주가 떠오르는 거죠. 결국 한밤중에 다시 기타를 잡고 쳐봐요. 원하는 소리가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이런 성격은 그의 첫 음반이 지금까지 나올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이다. ‘…위대한 탄생’ 리더로 활동하며 그는 ‘…위대한 탄생’에만 집중했다. 한눈을 팔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개인 음반 작업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조용필이 정규 19집 준비에 들어가면서 밴드가 1년간 휴식기를 갖게 된 것이다.
“국내에 기타리스트로서 저만큼 많은 걸 이룬 사람은 없을 거예요. ‘…위대한 탄생’만 해도 (음악계의) 국가대표들이 모인 밴드니까요. 하지만 그런 삶을 살면서도 마음속에선 ‘나의 음악’을 발표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늘 있었어요. 개인 음반 발매는 제게 또 다른 꿈이었던 셈이죠.”
26일 발표된 최희선의 앨범이 ‘또 하나의 꿈’으로 해석되는 ‘어나더 드리밍(Another Dreaming)’으로 명명된 건 이런 연유에서다. 그는 노랫말 없는 연주곡으로 음반을 꽉 채웠다. 총 12곡이 실린 앨범엔 강한 사운드의 록부터 진한 블루스 곡까지 다양한 색깔의 음악이 담겨 있다. 하지만 연주 음반이 별로 없는 가요계에서 ‘노래’가 없는 그의 음반은 도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보컬로 참여하고 싶다는 후배들은 많았어요. 저도 연주곡만으로 채우는 건 위험할 수 있어 고민이 많았죠. 하지만 저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 결국 순수한 연주 음악으로 앨범을 채우게 됐어요. 후배 기타리스트들에게 음반을 통해 귀감이 되고 싶기도 했고요.”
이어 그는 ‘…위대한 탄생’에서 20년 동안 활동하며 겪은 소감 등을 들려줬다. 그의 ‘멘토’나 다름없는 조용필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순 없었다.
“밴드에 들어오기 전 저의 기타 연주는 날이 딱 서 있는 칼과 같았어요. 대신 그 칼을 어떻게 다뤄야하는지는 잘 몰랐죠. 용필이 형한테 배운 건 칼을 사용하는 법이에요. 어떻게 하면 내가 목표로 하는 지점만 정확하게 찌를 수 있는지.”
프로 뮤지션으로 데뷔한 게 77년이니 기타리스트로 살아온 지도 올해로 36년째. 최희선에게 기타가 지겨웠던 적은 없었을까. “그런 적은 없었어요. 저만큼 행복한 기타리스트가 몇 명이나 되겠어요. 대신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엔 자고 나면 손가락이 아파요. 손가락 관절이 욱신욱신해서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고 있을 때가 더러 있죠(웃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