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콘서트계 전설’ 연출가 이종일 “내 무대인생 멘토는 관객”

입력 2013-03-27 17:12


무대의 주인공은 언제나 가수의 몫이다. 하지만 가수의 힘만으로 공연이 완성될 순 없다. 스포트라이트에선 비껴서 있지만 공연 이면엔 콘서트를 진두지휘하는 연출가와 가수의 노래를 조력하는 연주자가 있다. 이들이 없다면 그 어떤 출중한 실력의 가수도 객석을 휘어잡긴 힘들다. 공연 연출가 이종일(52), 기타리스트 최희선(52)은 각자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가요계 숨은 거물들이다. 지난 25일 서울 대흥동 한 카페에서 이종일을, 같은 날 동교동 한 스튜디오에서 최희선을 만났다.

조용필 양희은 이문세 신승훈 이소라 성시경 이승기….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들 톱가수의 교집합엔 공연 연출가 이종일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를 “콘서트 업계의 레전드(Legend·전설)”라 부른다.

이 같은 상찬을 받는 건 이종일이 국내 콘서트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공연 상당수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조용필 데뷔 35주년(2003)·40주년 콘서트(2008), 양희은 데뷔 35주년(2006)·40주년 공연(2011), 산울림 데뷔 30주년 콘서트(2006) 등이 그의 대표작들이다.

이종일은 요즘 이문세 콘서트 연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문세가 데뷔 30주년을 맞아 마련한 공연은 6월 1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리는데 객석이 5만석에 달한다. 대형 콘서트 연출의 베테랑이지만 워낙 큰 공연장인 만큼 고려할 요소들, 걱정되는 부분들이 많다고 했다.

“같은 장소에서 열린 조용필 35주년 콘서트 때 폭우가 내렸어요. 비가 너무 많이 오니까 춤을 춰야 하는 무용단이 무대에 설 수 없는 거예요. 날씨 외엔 음향도 걱정이에요. 멀리 있는 객석은 무대에서 200∼300m 거리인데 거기까지 노래가 잘 전달되도록 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죠.”

당장 앞두고 있는 공연이 이문세 콘서트인 만큼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연출의 콘셉트는 이문세 그 자체이다. 이문세라는 가수가 자연스럽게 돋보일 수 있는 공연을 만들겠다” “대형 경기장에서는 록이나 댄스 음악이 좋은데 이문세의 히트곡 대부분은 발라드여서 고민이다”….

고등학교 시절 연극반 생활을 했던 이종일은 1982년 민중극단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무대의 삶’을 살게 됐다. 무대감독과 연출가 등으로 활동하며 현재까지 300편 넘는 연극 및 뮤지컬 제작에 참여했다. 콘서트 시장에 뛰어든 건 96년 이문세 콘서트의 무대감독을 맡으면서부터다.

이후 그는 30편 넘는 콘서트를 연출했다. 그가 연출가로서 가장 염두에 두는 건 언제나 관객이다. “제일 중요한 건 어떤 관객들이 올 것인가 하는 문제예요. 관객들 연령과 성별은 어떻게 될지, 어떤 음악 취향을 가졌을지 종합해 연출을 하게 되는 거죠.”

그간 함께 작업한 가수들이 많은 만큼 인상 깊었던 인물도 여럿이다. 조용필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우연히 조용필을 보고 동료들과 “조용필 콘서트 연출이라면 돈을 안 줘도 맡을 수 있겠다”는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2003년 그는 조용필 데뷔 35주년 콘서트 연출을 맡았고, 2년 뒤 북한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조용필의 평양 공연도 연출하게 됐다. “조용필씨는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가왕(歌王)’이잖아요? 연출가로서 ‘로망’일 수밖에 없었죠. 실제로 공연을 연출하면서 느낀 건 라이브로 듣는 노래와 음반으로 듣는 노래가 전혀 차이가 없더라는 거예요.”

이문세 역시 그에겐 각별한 가수다. “매번 콘서트가 끝나면 공연장을 나가는 관객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돼요. 공연의 성패는 그때 판단하게 되죠. 그런데 이문세씨 공연의 특징은 공연장을 나가면서 안 좋은 얘기를 하는 관객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에요. 이문세씨는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장 잘 아는 가수라고 할 수 있어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