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신종수] 박근혜와 메르켈
입력 2013-03-27 18:39 수정 2013-03-27 21:44
롤프 마파엘 독일 대사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리더십을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메르켈 총리는 중요한 정치 현안과 관련해 각 정당의 의견을 경청한다. 시간을 두고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도록 기다린다. 현안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길 기다리고 그것을 토대로 결정을 내리는 스타일이다.”
독일 국민들이 메르켈 총리에게 깊은 신뢰를 갖고 존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현안이 있을 때 그 복잡한 모든 면을 다 깊이 들여다보고 분석해서 모든 측면을 고려한 뒤 가장 균형 잡힌 해결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마파엘 대사는 “모든 정치지도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를 국민에게 설득해야 한다”며 “설득이야말로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경청·설득은 지도자의 덕목
마파엘 대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생각났다. 박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메르켈 총리가 추구하는 경제정책이나 외교정책의 노선이 내가 추구하는 것과 비슷하고 둘 다 보수정당의 당수라는 점, 그리고 이공계 출신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잘 통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메르켈 총리를 예로 들며 ‘준비된 여성대통령’임을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를 닮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경제전문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에서 1위를 차지했다. 최근 독일 주간지 슈테른의 정치인 인기도 조사에서도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메르켈 총리는 자녀를 두지 않았지만 모성애적인 소통 방식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해 ‘무티(엄마)’란 별칭으로 불린다.
우리 국민들이 지금 박 대통령에게서 보고 싶어 하는 것도 모성애적인 소통방식일지 모른다. 박 대통령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통치가 오버랩되기보다는 육영수 여사의 온화한 이미지를 보고 싶어 한다. 대통령이 된 지금은 결기와 원칙을 넘어 포용하고 화합하는 국모의 이미지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야당 시절이나 비주류 수장 때라면 모를까.
지금 박 대통령에게 육 여사의 얼굴이 보이는가. 온화한 이미지 보다는 아무도 범접하지 못할 분위기는 아닌가. 잇따른 인사 실패도 있지만 불통 이미지 때문에 취임 후 한달밖에 안 됐는데 지지율이 역대 정부 임기초와 비교할 때 최저 수준으로 하락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박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강인한 성격도 물려받았겠지만 육 여사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정도 닮았을 것이란 게 국민들의 기대다. 국민들이 여성 대통령을 뽑은 데는 여성 리더십에 대한 기대도 작용했다.
관계 중심의 리더십 필요
여성 리더십은 상대를 배려하고 끌어안아 자발적인 협력을 이끌어내는 관계 중심의 리더십으로 수직적인 권위를 내세우는 남성 리더십과 다르다. 메르켈 총리가 여성 리더십으로 화합과 통합을 이룬 것처럼 박 대통령도 대선 때 약속한 국민대통합을 추구함으로써 소원해진 국민들과 관계 회복에 나서야 한다. 메르켈이 야당인 사민당과 대연정을 하고, 동·서독 간 통합을 이뤄내고, 경제를 회복시키고, 유럽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듯이 박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하고, 북한을 대화로 끌어들이고, 경제를 살리고, 한반도를 넘어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북한이 ‘1호 전투태세’에 돌입하고 핵 선제타격을 운운하는 등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박 대통령의 여성 리더십이 필요하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이전 정부와는 다른 유연성과 포용력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한과의 관계 회복을 시도하기 바란다.
신종수 산업부장 js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