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여성 보디가드

입력 2013-03-27 17:39

보디가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극성 팬들로부터 휘트니 휴스턴을 구해 번쩍 안고 나가는 영화 ‘보디가드’의 주인공 케빈 코스트너일 것이다. 잠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주위를 살피다 휴스턴을 향해 날아드는 저격수의 총알을 대신 맞고 쓰러지는 그의 모습에 많은 여성들이 가슴을 설레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깔끔한 슈트 차림으로 카지노 대부의 딸 고현정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고 결국엔 그녀를 구하다 죽어가는 TV 드라마 ‘모래시계’의 보디가드 이정재도 여심을 흔든 로망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 무사족 아마조네스는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거세하거나 이웃나라로 보내거나 죽였다. 여 전사를 만들기 위해 활 쏘기 편하도록 어릴 때 오른쪽 가슴을 도려내기도 했다. 모계사회나 신화 속에서는 여성들이 남성을 보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떡 벌어진 어깨에 부리부리한 눈매로 위기의 순간에는 날렵하게 재킷 속에서 총을 뽑아드는 현실 속 보디가드는 오랫동안 금녀(禁女)의 영역이었다.

1913∼14년 영국에서 여성참정권 요구 운동이 일어났을 때 에밀린 팽크허스트 등 ‘여성사회정치연합’ 리더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들로만 보디가드부대가 결성됐다. 여성 운동가들은 항의 표시로 공공시설에 불을 지르고, 감옥에 갇히면 단식투쟁을 하는 게릴라이자 전사였다.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는 생전에 ‘아마조네스’라는 40명의 미녀 보디가드 군단을 데리고 다녔다. 이들은 모두 카다피가 직접 선발한 처녀들로 순결맹세를 하고 짙은 화장에 하이힐 전투화를 신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날도 한복 매무새를 고쳐주거나 시내로 이동하는 오픈 차량 옆에서 매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는 여성 경호원의 모습이 화제가 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어제 비밀경호국장에 처음으로 여성을 임명했다. 주인공은 경찰 공무원으로 시작해 비밀경호국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줄리아 피어슨 현 국장 비서실장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피어슨 국장은 주요 행사에서 미국인을 보호하고, 나를 포함한 퍼스트 패밀리와 지도자들을 보호하는 데 적임자”라고 했다. 지난해 4월 백악관 경호원들의 해외 성매매 사건도 여성 국장 임명에 영향을 미쳤다는데 또 하나의 ‘유리천장’이 깨지는 소리가 반가우면서도 ‘사생활’ 관리 못하는 남성들을 이젠 여성들이 보호해줘야 하는 시대가 된 것 같아 어깨가 무겁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