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보이들 귀환 ‘거꾸로 정치’
입력 2013-03-26 18:42
그들이 돌아왔다. 구시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정치인들이 파키스탄과 캄보디아, 이탈리아에서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쿠데타로 집권한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파키스탄 대통령, 성추문에 시달리다 사임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왕정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노로돔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의 딸 아룬라스미가 바로 그들이다. 떠들썩한 귀환만큼 정국 혼란이 예상된다.
무샤라프 전 파키스탄 대통령은 4년간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24일(현지시간) 남부 도시 카라치로 귀국했다. 수백명의 지지자는 북을 치고 춤을 췄다. 그는 “비록 목숨이 위험에 처하더라도 귀국해 파키스탄을 구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받았다”고 말하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오는 5월 총선 출마 의지를 강력히 드러낸 것이다.
무샤라프는 집권 말기인 2007년 12월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 암살 의혹과 함께 제대로 경호를 제공하지 않은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1999년 쿠데타로 약 10년간 집권한 무샤라프는 2008년 총선 패배 후 망명길에 올랐다.
허핑턴포스트는 무샤라프가 파키스탄의 ‘정치적 공백기’를 틈타 권력 장악을 시도하고, 자신의 이미지 쇄신에 주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지난 16일 건국 66년 만에 처음으로 5년 임기를 무사히 채웠지만 인플레이션, 반복되는 정전, 불안한 치안 때문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1947년 이후 3차례 쿠데타가 일어나 번번이 정권이 무너졌고, 현 정부만 처음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총선은 과도정부 주도로 90일 안에 치러진다.
캄보디아의 왕정파 정당도 전 국왕의 막내딸을 내세워 쪼그라든 입지 회복을 노리고 있다. 푼신펙당은 지난 23일 시아누크 전 국왕의 막내딸인 아룬라스미를 당수로 선출했다. 왕족 참여로 정당 인기를 올리고 여성 표심을 얻기 위해서다. 아룬라스미는 “아버지의 정치 지침을 고수하겠다”고 밝히며 전 국왕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 푼신펙당은 시아누크 전 국왕이 1981년 세운 정당으로 한때 캄보디아 제1당으로 영향력을 과시했었다. 1998년 총선에서 훈센 현 총리가 이끄는 캄보디아인민당에 패해 제2당으로 전락했고, 현재 원내 의석은 2석뿐이다.
불법 도청과 미성년자 성추문으로 사임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가장 깊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가장 화려하게 복귀한 케이스다. 그가 이끄는 자유국민당은 지난 2월 총선에서 상원을 장악하고 하원에서도 1% 내의 표차로 석패했다. 유로존 경제위기의 진앙지인 이탈리아 민심이 베를루스코니의 선심성 공약을 선택한 것이다.
올드 보이, 올드 걸이 귀환하는 배경과 전략은 비슷하다. 집권 정당의 실패에 따른 정치적 공백기에 나타나 유권자에게 과거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래도 옛날이 좋았다”는 유권자는 세계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