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계약 성행… 납품단가 후려치기 ‘가시’ 안 뽑혀
입력 2013-03-26 18:17 수정 2013-03-26 22:41
대기업-中企 납품단가 실태 어떻기에… 대안은
경제민주화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지만 아직도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신음하는 중소기업들이 적지 않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26일 “납품단가 후려치기라는 이름의 손톱 밑 가시는 여전히 뽑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윤상직 장관은 지난 25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납품단가 후려치기 관행을 척결하고 ‘제값 주는 거래 관행’을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실태조사를 거쳐 종합 개선 방안을 내놓겠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중소기업계는 이 같은 방침을 환영하면서도 과연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뿌리 뽑힐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과도한 납품단가 인하는 합법적인 모양새를 띠고 시작된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공개입찰이나 경쟁입찰을 실시하고 최저가 낙찰제를 통해 납품업체를 선정한다. 그러나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요구가 들어온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이면계약이다. 일부 대기업들은 입찰에서 결정된 최저가보다 더 싼 가격으로 납품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관계자들이 불황을 핑계로 ‘실적이 안 좋다’며 중소기업들을 압박하는 방식도 흔히 쓰인다. 기계부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우리도 힘들다. 더 싸게 공급해 달라’고 압박하면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10년 동안 납품단가를 올려주지 않는 방식으로 사실상 납품단가 후려치기의 효과를 거두는 대기업도 있다.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경남의 A사는 대기업 B사와 10년 이상 거래를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2003년과 2012년의 납품단가는 거의 변화가 없다. 2003년에 개당 4.5원에 공급했는데 2012년에도 4.6∼4.7원으로 납품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물가와 인건비, 원재료 가격이 다 올랐는데 우리 납품단가만 제자리”라며 “이 가격으로 계속 공급한다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납품단가는 깎지 않지만 각종 추가 비용을 납품업체에 요구하는 불공정 거래 행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현재 대기업이 중소기업 기술을 탈취·유용한 경우에만 적용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납품단가 후려치기에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과도하게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한 기업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만 검찰에 고발할 수 있는 ‘전속고발권’을 감사원, 중소기업청, 조달청 등에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이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협상권을 위임하는 ‘납품단가 협상권 위임제’는 뜨거운 감자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는 대기업 51개사와 1차 협력사 318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기업의 60.8%는 납품단가 협상권 위임제를 반대했으며 1차 협력사 56.0%는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큰 규모의 1차 협력사는 대기업 성향을 많이 띠고 있어 중소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