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반달가슴곰

입력 2013-03-26 20:52

한반도에는 곰이 많이 살았다. 대부분 불곰과 아시아흑곰이었다. 생물학에서는 그렇게 분류하지만 우리는 불곰을 큰곰, 아시아흑곰을 그냥 곰이라고 불렀다. 북한이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용림큰곰과 관모봉큰곰은 불곰이다. 알래스카에서 연어를 잡아먹는 회색곰(그리즐리)과 같은 종이다.

아시아흑곰은 동부시베리아와 한반도, 히말라야 일대, 태국 산악지대에서 사는 검은 곰의 학술명이다. 이것이 바로 반달가슴곰이다. 앞가슴에 반달 모양의 흰무늬가 두드러져 나중에 붙인 이름이다. 70만년 전 구석기 유적지에서 화석이 발견됐을 정도로 오랫동안 우리와 부대끼며 살았다.

반달가슴곰의 수난은 일제 강점기에 시작됐다. 해수구제(害獸驅除·해로운 동물을 없앤다)라는 명분 아래 일제는 순사와 헌병 수천명을 동원해 야생동물을 마구 잡았다. 1919∼1924년 가죽이 벗겨진 호랑이가 60여 마리, 표범이 380여 마리였다. 여우, 노루는 물론 반달가슴곰도 무사하지 못했다. 사냥한 반달가슴곰이 1079마리라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실제로는 2000마리 이상으로 추정된다.

광복 이후에도 비슷했다. 비싼 웅담을 찾는 밀렵꾼 때문에 그나마 살아 남았던 반달가슴곰은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 1972년 건설부와 강원도 합동조사단이 설악산 일대의 야생동식물 실태를 조사했지만 곰을 만나지 못했다. 대신 곰을 봤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설악산에는 반달가슴곰을 비롯해 각종 동식물 1317종이 살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후에도 곰 사냥이 계속되자 문화재위원회는 1982년 반달가슴곰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했지만 너무 늦었다. 그 다음해 이모씨가 미국제 윈체스터 엽총으로 설악산에서 잡은 게 우리나라 자생 반달가슴곰의 최후였다.

아직도 지리산과 설악산에서 반달가슴곰을 봤다는 목격담은 끊이지 않고 있다. 환경부는 1997년 “최소한 여섯 마리가 지리산 남서부 일대에 살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눈으로 확인한 게 아니라 나무에 남은 발톱자국과 배설물을 분석한 결과였기에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그제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 두 마리가 새끼를 한 마리씩 출산한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언제부터인가 봄의 시작과 함께 들려오는 기쁜 소식이다. 지금 지리산에는 공식적으로 반달가슴곰 27마리가 살고 있다. 지리산 반달가슴곰 종 복원사업의 결과다. 그래도 야생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한반도가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