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강철규 우석대 총장 “경제민주화 없이는 창조경제 꽃피우기 힘들어”
입력 2013-03-26 17:40 수정 2013-03-26 22:30
강철규(68) 우석대 총장은 ‘재벌개혁 전도사’로 통한다. 노무현 정부 초기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를 이끌면서 그는 재벌 총수들을 떨게 만들었으면서도 유일하게 3년 임기를 채운 위원장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한 전직 장관은 당시 국무위원들이 강 위원장의 일관되고 확고한 입장과 처신을 잘 알기 때문에 회의석상에서 그를 쉽게 반박하거나 무시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강 총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래창조과학부가 생긴다고 해서 저절로 창조경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창조경제를 꽃피우기 위해서도 시장의 진입·퇴출 장벽 제거 등 경제민주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그래야 인재의 편중이 해소되고 창의력이 발휘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21일 서울 무교동 광일빌딩 우석대 서울사무소에서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만난 사람=임항 논설위원
-환경운동 단체인 환경정의의 이사장으로 지난 2월 말 취임했다. 어떤 계기이며 계획은 무엇인가.
“환경과 경제는 각각 생명의 존속과 번영, 그리고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한다. 양자가 모두 중요하다. 자본의 속성은 애니멀 스피릿(동물의 영혼)을 지니고 있어서 (최근 잇따른 화학물질 유출·폭발 사고에서처럼) 이익의 무분별한 추구가 생명과 환경을 해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성장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인식도 아직까지 성장을 하면 그것이 곧 발전이라고 생각해 왔다. 지금이라도 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돼야 한다.
환경정의란 ‘사회적으로 정의롭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그런 환경정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양자간 상생의 접점을 찾아보고 싶다. 구체적으로 운동 차원에서는 바른 먹을거리와 좋은 마을 만들기, 기후변화 완화와 대기오염 방지, 저소득층 주택 에너지 효율화 사업 등 사람을 위한 환경운동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내가 오래 몸담았던 경실련도 그랬듯 환경정의도 법 테두리 안에서 시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개선하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환경단체 ‘환경정의’ 이사장 2월 취임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정당정치를 겪어 본 소감과 평가는.
“훌륭한 분들이 대거 정치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서 공천심사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우리나라 정치가 많이 발전했다고 본다. 10월 유신, 장충체육관 선거, 대규모 정경유착 같은 큰 부패는 없어졌다. 발전의 계기는 김영삼 정부에서 도입된 금융실명제, 그리고 2004년 선거 관련법 개정이다. 그러나 성숙한 국민들의 수준과 요구는 그보다 앞서가고 있다. 국민들은 지금 미국 프라이머리(미국의 대통령 선거 예비 경선의 한 방식으로 당원이 아니라도 참여할 수 있다) 수준의 정치 과정과 주민 참여를 원하고 있다. 최근 도입된 모바일 투표가 그런 변화를 대변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국민들은 양극화 해소와 일자리 창출 과제에 대한 현실적 대안과 실천력을 정당에 요구하고 있지만 정당들은 이념 논쟁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계파와 이념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은 정치 불신을 불러왔다. 대안을 갖춘 인적 자원이 다수와 중심세력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국민 두려워하지 않는 정당 집권 어려워”
-공천심사위원장으로서 한때 심사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총선과 대선 과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공천 과정에서 최대한 독립적으로 판단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인선 기준은 사람과 생명을 존중하고, 서민의 아픔을 공감하며 이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려 하고, 공정성과 신뢰사회 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15명의 공심위에서는 비교적 합리적 인선이 이뤄졌지만 최고회의에 올라가면 계파 다툼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총선에서 야당에 유리한 국면이었다고 봤으나 야당이 지고 말았다. 여당은 공약의 홍보와 포장술에서 야당보다 앞섰다. 민주당의 자만감도 있었다고 본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당은 집권하기 어렵고, 하더라도 좋은 정치를 하기는 더 어렵다.”
-대선에서 복지 확대나 경제민주화 이슈가 공약으로 소비되는 방식과 과정의 문제점은.
“주요 이슈가 공론화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책화의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념적 정책, 포퓰리즘, 선거 구호에 그치는 공약도 많았다. 왜 그런 공약이 필요한지, 어떤 비용이 드는지에 대한 종합적 연구 결과가 제시됐어야 논의가 진전되고 유권자들이 바른 판단을 했을 텐데…. 앞으로 그런 역할을 하는 독립적 연구기관이 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그런 평가를 통해 각 당과 후보의 공약을 인증하는 과정이 생기면 좋겠다.”
“경제활동 진입·퇴출이 자유로워야”
-‘재벌개혁의 전도사’로 통했는데,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무엇이 경제민주화인지 확실한 개념 정립 없이 쏟아지는 공약들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는 세 가지다. 우선 경제활동 참여와 퇴출이 자유로워야 한다. 지금 재벌이 가로막으려 하면 시장 신규 진입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경쟁에서 탈락하는 시장 참여자의 퇴출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 기업이 적자가 나면 망해야 하는데 재벌 계열사의 경우 다른 계열사의 도움과 내부거래를 통해 연명하는 게 큰 문제다. 즉 퇴출장벽이 형성돼 있다.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두 번째는 담합과 독과점의 지배력 남용이 횡행한다. 특히 담합은 지뢰밭에서처럼 널려 있다. 업종별 협회가 구성돼 있는 시장은 거의 다 담합이 관행화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시장경쟁의 패배자와 노약자 및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복지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9∼1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2%의 절반에 못 미친다. 점진적으로 이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구체적 정책수단에 대해 평가해 보면.
“재벌 계열사 간 순환출자 규제는 옳은 방향이다. 계열사끼리 1000억원을 주고받으면 자산은 2000억원이 증가한다. 새누리당은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자고 했고, 민주통합당은 과거의 순환출자도 금지하자는 입장이었다. 과거의 순환출자까지 해소해야 경제력 집중과 이로 인한 폐해를 막을 수 있다. 산업자본의 금융회사 지분 4% 이상 소유를 금지한 금산분리도 옳은 방향이다. 금융업과 여타 업종 간 결탁을 막고 양 산업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당 내부거래와 담합행위 및 부당 하도급 단가 인하 등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부당 거래와 담합으로 얻은 이익의 3배를 벌금으로 부과하는 반면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는 매출액의 10% 이내에서 과징금만 부과한다. 이와 함께 현재 증권 분야에서만 인정되고 있는 집단소송 제도의 적용도 전면 확대돼야 한다. 이런 규제 정책들을 종합적으로 시행하지 않고는 ‘동반성장’이라는 구호를 외쳐봐야 달라질 게 많지 않다.”
-새 정부의 조직 개편이 경제민주화나 창조경제를 실천하는 데 적합하다고 보나.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는 것과는 별 관계가 없는 듯하다. 단 미래창조과학부는 신산업과 일자리 창출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지만, 그것도 시장의 진입·퇴출 장벽이 사라져야 비로소 진정한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다. 지금처럼 양극화된 인력시장에서는 인재들이 대기업에 들어가 안주하려고 한다. 경제민주화의 대상으로 골목상권 보호 등 가시적인 것만 볼 게 아니라 인재의 편중, 인재의 사장(死藏) 및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인한 폐해도 살펴봐야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경우 성적 상위 10% 졸업생은 창업하고 차상위 10%는 중소기업에 들어가 기업을 키운다. 차차상위 10% 졸업생이 대기업에 취업한다고 한다.
미래부가 생긴다고 해서 저절로 창조경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새 정부의 인사정책도 마찬가지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개념이 확고한 분들이 고위직에 발탁돼야 한다.”
“위원장 재임 중 참여·공정성 확보 노력”
-공정거래위원장 재임 시절 재계는 물론 고건 총리 등과도 마찰을 빚었다.
“선진국이라면 전경련과 같은 이익집단을 청와대에서 불러 회의하고 그러면 안 된다. 정부가 이익집단의 목소리에 일방적으로 이끌려다니면 곤란하다. 그들이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들어 반박하고 입증하려 했다. 전경련 간부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기도 했다. 재임 첫해인 2003년 재벌 계열사 부당 내부거래 조사 방침에 대해 고건 총리가 재계의 우려를 들어 완화시키려 했지만, 현행법상 필요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결국 조사를 강행했다. 지난해 대선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 잡는 곳’으로 잘못 인식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공정위는 규제 수단을 갖고 있으므로 일시적으로 물가인상을 억제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단기 처방은 장기적으로 시장을 왜곡시키고 공정위의 위상을 망가뜨린다.”
-위원장 재임 중 개혁과제의 성과와 현주소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참여와 공정성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 성과로는 2004년 금융 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을 강화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당시 재벌 소속 금융·보험 계열사가 보유 중인 비금융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은 30%까지 허용돼 있었는데 이를 15%로 축소했다. 당시 삼성그룹의 경우 계열사들의 의결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5조원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재계가 크게 반발했다.
‘국내 유수 대기업의 소유권이 외국인 손에 넘어간다’는 논리에 따라 당시 야당이 반대한 것은 물론이고 노 대통령도 우려를 나타냈다. 외국인 지분은 연합할 수도 없고 국내 기업을 경영하려는 뜻이 없다고 설득해 겨우 국회를 통과시켰다. 그렇지만 지난해 대선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이 의결권을 더 줄이겠다고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도 의결권 상한을 앞으로 5년간 5%로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재벌 계열사가 자산의 일정 범위 이상을 다른 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제도) 폐지 요구에 대해 취임 3년 후 폐지 여부를 검토한다고 했는데 하지 않았다.
“대학, 아직도 공장·병영형 인재 키워”
“재벌개혁을 시장친화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시장개혁 3개년 계획에 따라 재벌이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출총제 적용 대상에서 졸업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3년 후 주로 민영화된 공기업 몇몇이 출총제에서 졸업했지만 재벌들은 거의 다 졸업하지 못했다. 출총제는 이명박 정부에서 아예 폐지됐다. 그밖에도 재벌 규제들이 많이 완화되면서 경제민주화 시계는 거꾸로 갔다. 지난 5년간 20대 재벌 계열사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외환위기 이후 1998년부터 10년간 재벌 규제를 강화한 덕분에 재무구조가 좋아졌고, 2008년 금융위기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대학이 창조경제에 기여하려면 어떤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지금 대학이 여러 면에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렇지만 진정한 위기는 대학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에 대한 방향성을 잃었다는 데 있다. 카이스트에서의 잇따른 자살에서 보듯 서열 위주의 경쟁과 단선적 대학 평가가 대학사회의 생명인 다양성을 말살하고 있다. 한국의 대학은 아직도 공장·병영형 인재를 키우고 있다. 구태의연한 정답을 배운 모범생은 제도에 순응하는 사람일 뿐이다.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배운 다양한 창의적 인재를 길러야 한다. 대학의 할 일을 네 가지로 요약하면 자신의 발견, 잠재력의 계발, 더불어 살기, 특허취득·발명·사회변혁 등 네 가지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창조경제를 위해서는 ‘모든 개인은 각자의 재능과 잠재력이 있다’고 전제하고 그것을 찾아내줘야 한다.”
hnglim@kmib.co.kr
■ 강철규 총장은
△충남 공주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제학 박사 △서울시립대 교수 △규제개혁위원회 공동위원장 △부패방지위원회 초대 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우석대 총장(현)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