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세창] 나홀로 역주행하는 은행산업

입력 2013-03-25 20:27


박근혜 대통령의 다양한 비유화법이 화제다. 그중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예로 들은 ‘손톱 밑 가시’나 서민들의 고통을 이야기한 ‘신발 안 돌멩이’는 많은 언론에서 회자됐다. 그만큼 당선인의 의중에 중소기업과 서민 정책이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 금융감독원이 6개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방카슈랑스 영업행위를 검사한 결과 중소기업과 저신용 개인에게 대출을 빌미로 강제로 보험을 판매하는 ‘꺾기’ 행위가 대규모 적발됐다. 중소기업과 서민들에게 은행 대출은 단순한 금융거래 차원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월적 지위를 가진 은행이 꺾기 등의 횡포를 부릴 경우 대출을 받는 입장에서 거절하기 어렵다.

방카슈랑스의 본래 취지는 은행이 보험회사의 대리점 역할을 해 수수료를 낮추는 방법으로 고객에게 좀 더 저렴한 보험 상품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좋은 취지의 방카슈랑스가 우리나라에서는 은행의 횡포로 인해 중소기업의 손톱 밑 가시로 변질되고, 서민들에겐 신발 안 돌멩이가 돼버린 것이 현실이다.

방카슈랑스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금융시장 개방정책에 따라 은행의 새로운 사업영역 확대를 위해 도입됐다. 다만 보험 산업 전반에 주게 될 급작스러운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은행이 판매할 수 있는 보험 상품을 2000년대 초반부터 단계적으로 개방했고, 이후 은행은 강력한 판매력을 통해 그 시장을 점차 넓혀 나갔다.

그러나 제도 운영과정에서 은행의 불완전판매와 설계사 해촉 등 여러 문제점이 노출돼 2008년 국회에서 개인 보장성보험과 자동차보험에 대해서는 허용하지 않기로 사회적 합의를 보았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최근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은행권이 인수위원회에 방카슈랑스 전면 개방을 건의했다고 한다. 저금리로 인한 예대마진 악화와 각종 수수료 감면 요구에 따른 수익 감소를 방카슈랑스 판매상품 확대를 통해 메우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은행권의 요구를 수용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고, 사회적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고객에게 상품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직원의 실적과 은행 수수료 수입만을 위해 고객에게 불필요한 상품을 판매한 후 사후책임은 지지 않는 행태가 만연하다. 원치 않았던 보험을 중도 해약할 경우 계약자의 금전적 손해는 보상받을 길이 없어 보험 및 금융에 대한 신뢰가 저해될 것이다. 거기다 사회적 약자인 보험설계사들은 기존 시장을 은행에 잠식당해 예전보다 설 자리가 매우 좁아지게 된다. 2003년 방카슈랑스 도입 후 생명보험사 여성설계사가 12만4347명에서 10만3643명으로 2만명 넘게 감소된 전례가 있다.

외환위기 이후 천문학적인 공적자금 투입으로 회생한 은행산업은 이후 끊임없는 대규모 인수합병(M&A)을 거치며 현재의 4대 금융지주 과점체제로 재편됐다. 이 과정에서 국내 은행에 대한 금융당국의 끊임없는 지원이 있었지만 주요 시중은행의 해외 수익은 5%도 채 되지 않고 오로지 국내에서만 우월적 지위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금융지주사는 외국인 지분율이 60%가 넘기 때문에 이러한 막대한 수익은 외국인 대주주에게 배당돼 국부유출 논란을 일으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은행산업의 전문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과도한 수익 추구를 규제하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올바른 판매 프로세스의 정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세창 홍익대 경영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