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사 시스템 안 고치면 문제는 계속될 것

입력 2013-03-25 20:25

“청와대는 구멍 뚫린 인사 검증시스템을 시정하고, 검증을 담당한 민정라인 책임자를 문책하라.”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와 김학의 법무차관에 이어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물러난 25일 새누리당 서병수 사무총장과 이상일 대변인이 마이크를 잡고 공개적으로 요구한 내용이다. 인사 ‘사고(事故)’가 아니라 ‘참사(慘事)’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까지 주문한 민주통합당과 정도는 다르지만, 집권 초기의 청와대를 겨냥한 여당 목소리치고는 매우 강하다. 박근혜 정부 들어 중도 낙마한 장·차관급 고위 공직 후보자가 6명으로 늘어나자 여당으로서도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한 후보자 경우는 전형적인 검증 실패 케이스다. 야당의 거센 공격을 버텨내던 그가 하차하기로 결정한 것은 수년간 해외 미신고 계좌에 수십억원을 예치해 두고 수억원을 탈세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범죄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무거운 사안이다. 청와대 검증라인이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무능력한 것이고, 알고도 묵인했다면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기관의 수장으로 낙점했는지 어이가 없다.

박 대통령이 홀로 그를 지명한 것이라면 새누리당 일각의 요구대로 국민들에게 유감 표명은 해야 한다고 본다. 어물쩍 넘기기에는 국민들의 실망감이 크다. 나아가 보안을 중시한 나머지 시스템에 의지하지 않는 인사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 한 후보자를 비롯해 문제 있는 인사를 추천한 참모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해외에 거액의 비자금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 20년 넘게 대형로펌에 근무하면서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 등을 변호하며 100억원대의 재산을 모은 그가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감독할 공정거래위원장직 제의를 수락한 것 역시 이해가 안 된다. ‘돈’에다 ‘권력과 명예’까지 갖겠다는 욕심이 지나쳤다. 그는 “이제 본업인 학교로 돌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론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검찰과 국세청은 지금이라도 그의 해외 비자금과 탈세 의혹에 대해 철저하게 수사한 뒤 불법 사실이 드러나면 엄벌해야 한다.

자진 사퇴한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성(性) 접대 연루 의혹을 놓고 청와대와 경찰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면서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청와대는 검증 단계에서 경찰에 확인했지만 ‘내사가 진행되는 것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것이고, 경찰은 청와대에 ‘사실로 판명될 경우 파장이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를 규명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청와대 검증라인에 대한 대수술이 절실하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