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개 넘는 日 장수기업 ‘10년 불황’ 탈출 견인했다
입력 2013-03-25 18:05 수정 2013-03-25 22:40
한은 ‘日 장기존속 기업’ 보고서 속 200년의 비결은
일본 기업은 어떻게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했을까. 한국은행은 그 해답을 무려 3000곳이 넘는 ‘장수기업’에서 찾았다. 세계적 기술을 보유한 일본의 장수기업이 경기침체기에 유일한 성장동력이었다는 분석이다.
25일 한은의 ‘일본 장기존속 기업의 경제·사회적 위상 및 경영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창업 200년을 넘긴 기업은 57개국, 7만2712곳에 이른다. 이 중 일본 기업이 3113곳으로 전체의 43.2%를 차지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창업 200년을 넘은 기업이 한 곳도 없다. 100년을 넘긴 기업은 두산(1896년 창업)과 동화약품공업(1897년 창업) 두 곳뿐이다.
보고서는 일본의 장수기업이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이어진 저성장 시대를 극복하는 발판이 됐다고 평가했다. 불황의 늪에서도 첨단기술을 보유한 장수기업이 굳건히 버티면서 고용과 성장의 디딤돌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일본 장수기업의 고용기여도는 매우 높다. 지난 10년 동안 일본에서 폐업으로 연간 평균 209만명이 직장을 잃었지만 100년 이상 장수기업은 종업원 580만명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다. 장수기업의 도산율은 1%도 되지 않았다.
장수비결은 ‘경영권’에 있다. 장수기업은 ‘3대째는 양자’ ‘혈족보다 노렌(상점 이름이 적혀 있는 천으로 기업 자체를 의미하기도 함)’이라는 말을 통념으로 여긴다. 장자가 있더라도 경영자 자질이 부족하면 능력 있는 직원이나 외부 인재를 영입해 사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또 상속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형제 중 후계자로 선정된 사람만 기업에 남게 하고 다른 형제는 모두 다른 업종에 종사하도록 했다.
대신 ‘경영이념’은 철저히 계승했다. 장수기업의 77.6%는 사훈이나 가훈을 중시한다. 확고한 경영이념은 의사결정의 주체가 바뀌더라도 ‘금전적 득실’에 휘둘리지 않는 원동력이 됐다.
기업 고유의 기술을 지키는 것은 물론 장인정신으로 품질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다. 1902년에 창업한 ‘구레다케’가 대표적이다. 먹과 붓을 만드는 이 회사는 먹 제조기술을 최상급으로 유지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발광도료를 만들어 연 매출 700억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정후식 한은 조사국 부국장은 “일본의 장수기업은 장기불황에서 벗어나는 원동력일 뿐만 아니라 문화 형성에도 선도적 역할을 했다”며 “우리나라도 세계에서 통용되는 고유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을 국가 차원에서 파악해 적극 관리·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