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해외도피 파문] 퇴임이 두려운 국정원장들, 왜… 과도한 충성심·국내 정치 개입이 화근

입력 2013-03-25 18:03 수정 2013-03-25 22:32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출국금지를 당하면서 또다시 국내 최고 정보기관 수장이 퇴임 후 검찰에 불려갈 처지에 놓이게 됐다. 정치권 인사들은 25일 “도를 넘은 국내 정치 개입, 정권을 향한 과도한 충성이 불행한 역사를 반복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시절부터 원 전 원장 직전까지 재임한 국정원장 10명(옛 안기부장 포함) 가운데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은 사람은 7명이다. 퇴임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대북협상과 관련해 기밀을 누설한 김만복 전 원장을 제외한 6명은 정치공작·불법감청 등 국내 정치에 개입한 게 화근이었다.

특히 권영해·임동원·신건 전 원장 등은 구속까지 됐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다. 그는 퇴임 후 4번이나 검찰에 기소되는 기록을 세웠다. 97년 대선 당시 안기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을 막기 위해 북한과의 연루설을 퍼뜨린 이른바 ‘북풍사건’과 관련해서는 선거법 위반 등으로 5년형을 선고받았다.

임동원·신건 전 원장은 주요 인사들의 휴대전화 불법감청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돼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개인비리가 아니라 수십년간 조직적·관행적으로 이뤄진 일”이라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김덕·천용택 전 원장은 국정원의 불법 감청조직인 미림팀 운영 및 관련 자료 활용에 따른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종찬 전 원장은 언론장악 시나리오를 담은 언론대책문건 유출 파문으로 곤욕을 치렀다. 문민정부 이전 정보기관 수장들은 군사반란 및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줄기소를 당했다.

국정원장들의 연이은 몰락은 통제받지 않는 막강한 권력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측면도 적지 않다. 국정원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인사는 “국정원은 감사도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예산 통제를 받지 않는다”며 “정권이 바뀌거나 수장이 교체된 후 검찰이 수사에 나서기 전에는 불법을 스스로 중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원 전 원장의 경우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지만 새 정부 출범과 함께 18대 대선에서 인터넷 여론조작 등을 시도한 혐의로 야당과 시민단체로부터 고소·고발을 당했고 퇴임과 동시에 검찰이 칼날을 겨누고 있다. 원 전 원장이 대선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국정원 대수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