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부에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송환 촉구… 박세환 목사, 주한 일대사관 앞서 서거 103주년 추모예배
입력 2013-03-25 17:55 수정 2013-03-25 21:28
25일 오전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 꽃샘추위에 두툼한 외투를 껴입은 6명의 성도들이 박세환(58·대한민국 국토수호교회) 목사와 함께 줄지어 섰다.
모두 굳은 표정이었다. 잠사 후 박 목사가 “우리는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지키는 사람들이다. 크리스천으로서 이렇게 나서지 않으면 대한민국 역사가 바로 서지 못할 것 같아 안중근(1879∼1910) 의사 서거 103주년인 3월 26일을 하루 앞두고 예배를 드리려 한다”고 밝혔다.
전경 1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한독립군 의병장 독립특파대 의사 안중근 서거 103주년 추모예배’는 이렇게 시작됐다. ‘애국가 봉창’이 시작되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대한독립만세, 동양평화만세” 만세 3창을 외칠 때는 눈물을 글썽이는 이도 눈에 띄었다. 찬송가 ‘여기에 모인 우리’를 힘차게 찬양하기도 했다. 예배를 마친 박 목사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안 의사 재판기록과 암매장 장소 공개, 유해 송환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은 서한을 주한 일본대사관을 통해 전달했다.
박 목사는 안 의사의 애국애족사상을 계승하기 위해 이 자리에서 10년째 기도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면 출근해 저녁까지 자리를 지킨다. 위안부소녀상 뒤쪽 벽에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와 태극기를 설치했고, 소녀상 좌우편 화단에 무궁화를 심었다. 소녀상과 위안부 평화비를 청소하는 것도 박 목사가 하는 일이다.
박 목사가 시위에 나선 것은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때문이었다. 1980년 중반 나카소네 총리를 시작으로 극우 정치인들이 참배를 하면서 영토침략의 야욕을 다시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박 목사는 이날 “우리가 일제의 침략적 지배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목숨을 초개와 같이 생각하며 항일운동에 헌신했던 안 의사 같은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일본 정부는 안 의사 유해발굴 문제가 꼭 풀고 가야 할 한·일 간 문제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한은 2005년 네 차례 실무접촉과 현지조사를 거쳐 유력한 매장 추정지를 선정. 2008년 3∼4월 29일간 발굴 작업을 했지만 안 의사 유해를 찾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한국 측 발굴단 3명이 일본 본토에서 조사활동을 벌이려 했으나 일본 정부가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되돌아왔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