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3월 26일] 생각을 물으시는 예수님

입력 2013-03-25 17:16


찬송 : 주 날 불러 이르소서 329장(통 267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8장 22∼34절


말씀 :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는 뛰어난 토론 능력을 소유했던 대통령이었습니다. 그의 토론 능력은 어머니 로즈 여사의 교육에 영향을 받은 바 큽니다. 로즈 여사는 “세계의 운명은 좋든 싫든 간에 자기의 생각을 남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4살 때부터 토론 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질문하기를 즐겨하셨고 토론하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살 때 가족과 함께 예루살렘에 가셔서 유월절을 지내신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예수의 부모가 예수를 잃어버렸습니다. 사흘 만에 성전에서 예수를 발견했을 때 예수님은 성전에서 랍비들과 토론하고 계셨습니다.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눅 2:26)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질문을 즐겨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벳새다에서 어느 보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23절) 이뿐 아니라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하게 질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막 8:27)고 묻고, 이어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막 8:29)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해서 실의와 좌절에 빠져있던 베드로를 부활하신 후에 찾아오셔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고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가르치기보다는 청중들에게서 답을 끌어내기 위해 질문을 많이 하셨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하려고 그러셨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혀 와서 머리 숙인 여인에게도, 사람들이 돌아가자,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요 8:10)고 물으심으로써 상대방이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질문하기를 좋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범죄한 아담에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라고 물으셨고, 동생을 죽인 가인에게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질문은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며,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답변을 이끌어낼 뿐 아니라 사고력, 비판력, 표현력, 창의력을 자극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리고 질문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듣겠다는 의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각을 물으십니다. 우리의 답변을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는지 주의 깊게 들으십니다. 우리의 가정의 문제, 한국사회의 청소년의 문제의 근원에는 불통이 있습니다.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대차이가 생겨나고 오해가 생겨나고 불신이 생겨납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묻고 대답하고 또 묻고 대답하는 과정을 통하여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시듯이 상대방을 존중하여 상대방의 생각을 물으시고, 대답을 경청하여서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 우리의 가정에서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서로가 잘 듣고 질문하고 대답함으로써 이해와 사랑이 깊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설동주 목사(과천약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