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유치장에 ‘힐링 벽화’를 그리다… 추계예술대 학생들의 특별한 재능기부
입력 2013-03-24 18:40 수정 2013-03-24 23:36
“경찰서 유치장에 벽화 작업을 해보는 게 어때요?”
추계예술대 총학생회장 박동근(24)씨는 지난 1월 서울 서대문경찰서 한 정보관으로부터 이 같은 제의를 받고 당황했다. 평소 학내 ‘벽화 그리기’ 동아리 학생들이 지하철 담이나 복지관 등 지역사회 미화 작업을 벌였지만 경찰서 유치장은 상상도 못했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학교 동아리 소속 학생 10명은 첫 작업을 하던 날 심호흡을 하고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섰다.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들이 억울하게 유치장에 갇히던 영화 장면은 많이 봤지만, 실제 유치장은 영화 속과 달랐다. 칙칙한 분위기와 왠지 모를 눅눅한 공기가 사람을 주눅 들게 했다. 박씨는 24일 “이런 공간에 ‘힐링 벽화’를 그려 넣어 경찰관과 피의자들이 그림을 볼 때마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게끔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술 전공생 7명을 중심으로 한 벽화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심리적으로 안정되도록 하는 그림을 선정하는 게 관건이었다. 학생들은 책을 뒤져가며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그림, 색을 찾아 도안을 구성해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3주간의 고된 작업이었지만 이들은 재능기부를 통해 유치장 벽화 10점을 완성했다.
모든 유치장 방에는 4개 이하의 색을 사용했다. 많은 색을 써서 화려하다는 느낌이 들면 심리적 안정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들은 수감자들의 특성을 고려해 저마다 다른 그림을 그려 넣었다. 여성 전용방에는 행복한 미소를 짓는 여인의 모습과 ‘세상을 믿으면 언젠가 나도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은 시화를 그려 넣었다. 또 경범죄자나 석방 직전 피의자가 대기하는 경미범 방에는 민들레 홀씨를 부는 소년의 모습을 담아 심리적 동요를 억제하도록 했다. 출입문은 자연을 배경으로 힘차게 뻗어가는 나뭇가지 그림을 그려 넣어 유치장을 ‘희망의 공간’으로 묘사했다.
서대문서 관계자는 “유치장에 갇히는 사람들은 아직 죄가 확정되지 않은 사람들이라 피의자와 이들을 지키는 경찰관 모두 심리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며 “피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정서적 안정을 돕고자 벽화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