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정원장 出禁… 檢 ‘정치개입 의혹’ 겨누나
입력 2013-03-24 18:02 수정 2013-03-24 23:13
국가정보원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고발된 원세훈(62) 전 국정원장이 출국금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는 지난 23일 원 전 원장에 대해 법무부를 통해 출국금지 조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검찰 관계자는 “(출국금지 건은) 공식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원 전 원장은 박근혜 출범 이후 연이어 고소·고발 사건이 접수된 상태다. 검찰은 “꽤 여러 건, 최소 5건은 걸려 있다”고 말했다.
고소·고발의 요점은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조직을 불법적으로 국내 정치에 개입시켰다는 것이다. 지난 18일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의 국정원 내부 문건 폭로가 발단이 됐다. 진 의원은 “2009년부터 올해 초까지 국정원 내부 게시판에 최소 25차례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이라는 글이 올라왔다”며 내용을 공개했다. 크게 ‘선거 국면에서의 인터넷 여론 대응’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 ‘일부 종교단체 정부 비판 견제’ ‘4대강 등 정부 정책 홍보’ 등이다. 예를 들어 2010년 7월 지시사항에는 “심리전단이 보고한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방안은 내용 자체가 바로 우리 원이 해야 할 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에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19일 원 전 원장을 국정원법 위반,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21일에는 민변과 참여연대 등이 고발했다. 이들은 원 전 원장이 국정원법상 정치관여 금지(9조)와 직권남용 금지(11조) 조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민주노총과 전교조, 4대강 범국민대책위원회도 고발에 동참했다. 당일 저녁 원 전 원장은 국정원에서 퇴임식을 열었다.
이 사건들은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에 배당됐다. 아직 고소·고발인 조사도 진행되지 않은 초기 단계다. 그런데 원 전 원장이 퇴임 사흘 만인 24일 미국행 비행편을 예약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그가 미 스탠퍼드대 객원연구원으로 갈 예정이며, 지난주 서울 남현동 자택에서 일부 이삿짐을 내갔다는 얘기도 나왔다. 야당은 “수사 회피 목적의 도피성 출국”이라고 반발하며 검찰에 출국금지 조치를 요구했다. 민주통합당은 ‘국정원 헌정파괴 국기문란 진상조사특별위원회’(원세훈 게이트 진상조사위)도 꾸렸다. 일부 의원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원 전 원장의 출국을 저지하기 위해 인천공항 출국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원 전 원장은 공항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이 서둘러 조치에 나선 것은 원 전 원장이 실제 미국으로 나갈 경우 ‘도피를 방조했다’ 등 비난을 고스란히 검찰이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정권과 선긋기를 하려 한다는 해석도 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