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도 뻥 뚫린 초등교… 안전불감증 달라진 게 없다
입력 2013-03-24 17:55 수정 2013-03-24 20:10
지난 21일 오후 2시30분쯤 서울 여의도동 여의도초등학교 정문 앞. 검은색 상하의에 검은색 가방을 멘 국민일보 수습기자가 정문을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초였다. 학교보안관이 자리를 비운 정문 옆 초록색 초소는 하교시간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데 무용지물이었다. 30대 초반 남성인 수습기자는 아무런 신분확인 절차 없이 학교 안으로 진입했다.
교문을 통과하니 운동장을 거쳐 복도,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교실까지 무사 통과였다. 피구와 축구를 하는 50여명의 학생들 사이를 누벼도, 건물 앞 CCTV를 물끄러미 쳐다봐도, 심지어 운동장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보는 시늉을 해도 달려와서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학교 안 구름다리와 복도에서 카우보이모자를 쓴 학교보안관과 여교사를 한 차례씩 마주쳤지만 그냥 지나칠 뿐이었다.
같은 날 오후 3시30분쯤 또 다른 수습기자가 방문한 서울 효제동 효제초등학교 역시 외부인 출입에 무방비이긴 마찬가지였다. 담장을 없애고 학교를 시민들에게 개방한 효제초의 출입은 더욱 수월했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니 수업이 끝난 학생들과 방과후 돌봄교실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몇몇 보였다. 복도를 활보하던 20대 후반의 수습기자가 어린 여학생과 10여분간 대화를 나눴으나 이를 경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10년 ‘김수철 사건’과 지난해 ‘계성초 난입사건’의 악몽은 벌써 잊혀진 듯했다.
CCTV·학교보안관·스쿨폴리스 등 정부가 학생들의 안전과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온갖 대책을 쏟아내면서 외부인의 학교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다고 발표했지만 서울시내 초등학교 교문은 여전히 대부분 뻥 뚫려 있었다. 본보 수습기자 2명이 여의도초·대방초·대길초·당서초·염리초·미동초·매동초·덕수초·효제초·혜화초 등 서울시내 초등학교 10곳의 교내 진입을 시도해본 결과 이 중 7곳은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 특히 5곳(여의도초·염리초·매동초·효제초·혜화초)은 학교보안관이나 스쿨폴리스의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거나 있어도 외부인의 기습 방문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 미동초와 덕수초의 경우는 방문목적을 설명하기도 전에 ‘행정과에 왔냐?’ ‘행정민원을 보러 왔냐?’라 물어본 뒤, 별다른 의심없이 출입증을 순순히 발급해줬다. 학교보안관은 기자에게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물어봤으나, 신분증 검사나 해당부서에 신분 확인 절차를 생략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신분을 위조할 수 있는 구조였다. 출입을 통제한 곳은 대방초·대길초·당서초 등 단 3곳뿐이었다.
학교 안팎에 CCTV가 설치돼 있었지만 이를 실시간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새 학기부터 외부인의 학교 방문 시 ‘방문증 패용 의무화’나 ‘학교 방문 사전예약제’ 등을 실시한다고 했지만 정작 일선 학교에서는 출입증 발급은커녕 신분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최근 경북 경산의 학생 자살사건 이후 CCTV를 확대하고 화질을 개선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지만 학부모들의 불안을 덜어줄지는 의문이다.
참교육학부모연대 박범이 회장은 “학교안전 사고는 시설의 미비가 아니라 ‘내 일이 아닐 것이다’라는 학교 구성원들의 책임불감증에서 비롯된 일”이라며 “낯선 외부인이 찾아오면 적어도 ‘몇 학년 몇 반 누구 학부모세요?’라고 물을 수 있는 규칙이나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 조성은 황인호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