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모 방치 3자매 “엄마·아빠 사랑 처음 느꼈어요”… 피아노 치며 찬양
입력 2013-03-24 17:23 수정 2013-03-24 20:03
김바울 목사 부부가 구출한 ‘계모에게 방치된 10대 3자매’ 그 후…
‘못된 계모에 방치된 10대 세자매…영양실조에 신체마비.’
지난 1월말 보도된 ‘세 자매’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당시 벼랑 끝에 놓였던 세 자매의 처지가 세상에 알려지고 이들이 구출되는 과정에는 김바울(53·일산 Y교회·예장대신) 목사 부부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언론 노출을 삼갔던 김 목사 부부와 세 자매 중 맏이인 김가영(가명·19) 양을 24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저, 여기서 아르바이트 할 수 있나요?”
성탄절 직후인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빨간색 운동복에 점퍼를 걸친 깡마른 10대 소녀가 경기도 일산 덕양구의 한 공장 출입문 안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김 목사 아내인 박은정(가명·53) 사모와 가영이의 첫 만남이었다. 이 공장은 김 목사 부부가 개척교회 목회를 꾸려가기 위해 운영 중인 인쇄물제작업체의 작업장이다.
“일단 작업장이 가영이네 집에서 멀지 않았고, 집안에 딱한 사정이 있는 것 같아서 채용을 했어요. 그런데 왠지 보이지 않는 상처가 있는 것 같았어요. 얼굴이 늘 어두웠고, 옷에서는 항상 곰팡이 냄새 같은 게 났고….”(박 사모)
김 목사 부부는 틈틈이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가영이네 처지를 알게 됐다.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다는 것, 가영이 밑으로 여동생이 2명 있다는 것. 그리고 가정 형편이 썩 좋지 못하다는 정도였다. 김 목사 부부가 세 자매의 처참한 형편을 목격한 건 지난 1월 중순쯤이었다.
“사모님, 막내 동생이 아파요. 도와주세요….” 가영이의 다급한 전화 목소리에 집으로 달려간 박 사모는 놀라서 까무러치고 말았다.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었어요. 원룸의 사방 벽은 온통 곰팡이가 슬어 있고, 도시가스는 끊긴 지 2년이 넘었더라고요. 전기장판은 코드가 없었고, 그 위에 종이박스가 서너 장 깔려 있었어요. 이 한겨울에….” 박 사모가 더 놀란 건 가영이의 여동생들이었다. 미영(가명·18), 소영(가명·15)양 모두 먹지 못해 앙상한 뼈만 남은 상태였다. 특히 막내는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약해진 상태였다.
박 사모는 즉시 김 목사에게 연락을 취했고, 그날 저녁 가영이네 집에서는 대대적인 공사가 벌어졌다.
김 목사는 공장 직원들과 교회 성도들에게 전화를 넣어 도움을 요청했다. 도배와 장판작업, 집안 청소가 일사분란하게 이어졌다. 가재도구와 이불까지 새로 장만하고, 도시가스도 들어오도록 조치를 취해줬다. 쌀과 밑반찬까지 마련해 냉장고에 넣어주고 나니 꼭 12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세 자매는 김 목사 교회 성도의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이어 박 사모는 주민 센터와 구청 등 지자체 복지담당 관계자를 만나 세 자매의 열악한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호소했다. 세 자매의 사연은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결국 세 자매의 계모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친아버지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는데, 김 목사 부부와 교회 성도들이 세자매 아버지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을 해 준 덕이 컸다.
현재 세 자매는 김 목사 부부와 지자체의 도움으로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다. 몸이 많이 약한 미영·소영 양은 병원에 입원 중이다. 특히 골다공증으로 인한 고관절 골절로 한차례 수술을 한 막내 소영이는 재수술을 앞두고 있다. 가영이는 김 목사 부부 집에서 지내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다음 달 초, 가영이네 가정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지자체에서 마련해준 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새 출발을 앞둔 세 자매에게 김 목사 부부는 후견인이 되어주기로 했다.
“목사님과 사모님께 너무 감사해요. 엄마 아빠 사랑을 처음으로 느꼈어요. 나중에 커서 저 같은 사람을 돕는 사람이 꼭 되고 싶어요.”
가영이의 말에 김 목사 부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 목사는 느지막이 목회를 시작해 마흔 넘어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전까지는 사업을 하다가 쓴맛 단맛을 다 본 처지라고 했다. 10여년 전부터 판촉물에 광고 문구를 새기는 인쇄물제작 일을 하면서 자비량 목회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시련을 겪고 있다. 김 목사 부부 둘 다 갑상선 암과 싸우고 있기 때문. 김 목사는 3차례, 박 사모는 1차례 수술을 한 상태이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오히려 세 자매를 향한 소망이 더 간절해보였다.
“가영이와 동생들이 건강과 심리적 안정을 되찾고, 모두 하나님을 만나면 좋겠어요.”
이날 오전 11시50분, 김 목사가 시무하는 일산의 Y교회 성도들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 찬양곡 ‘축복송’을 부르고 있었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고 있는 이는 가영이였다. ‘하나님 이 가정을 축복하소서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 소박한 가정의 행복을 바라는 가영이의 기도가 찬양곡에 담겨 있었다.
고양=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