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용재 오닐 “비올라는 고요한 밤 바람소리 할머니가 준 건 음악 아닌 나눔”
입력 2013-03-24 17:01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 클래식 스타 리처드 용재 오닐(35). 그가 2005년 1집 이후 낸 7장의 앨범을 한데 아우르는 리사이틀 ‘마이웨이(My Way)’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지난주 입국한 후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촬영, 네이버가 마련한 팬과의 이벤트, 자선단체 홍보대사 위촉 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를 21일 서울 소공로 한 호텔에서 만났다.
3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공연 얘기부터 꺼냈다. “첫 번째 앨범의 첫 곡과 가장 최근 앨범의 첫 곡을 선곡했어요. 그동안의 활동을 한데 아우른 하이라이트 공연처럼 꾸미려고요.” 클라크의 ‘비올라 소나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비탈리의 ‘샤콘느 g단조’,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 등이 연주된다.
비올리스트로는 최초로 미국 유명 음악학교인 줄리아드음악원에 입학한 그는 2006년에는 미국 최고 권위의 클래식상인 ‘에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상’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5명의 젊은 남성 클래식 음악가로 구성된 앙상블 ‘디토’의 리더로 활약 중이다.
매년 세계를 누비며 100회 정도의 연주를 하지만, 그는 7장의 앨범을 내면서 배운 것이 많다고 말했다. “앨범은 라이브 공연과는 달리 완벽해야 하고, 70분 동안 곡들을 하나의 주제로 연결시켜야 하기 때문에 어려워요. 게다가 20세기 곡 중에는 비올라를 위해 작곡된 것이 많지 않아 7집까지 내기 위해선 고전 레퍼토리까지 도전해야했지요.” 바이올린과 첼로에 비해 덜 대중적인 악기 비올라로 7집까지 낸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 그의 앨범은 클래식 연주자로는 거의 유일하게 국내에서 15만장 이상이 팔렸다. 독주회도 매번 일찌감치 표가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오닐이 비올라를 처음 시작한 것은 열다섯 살 때. 소리가 너무 좋아서 끌렸다. “바이올린 소리는 햇살좋은 날 파도가 수백만 번 다른 모습으로 반짝이는 것 같아요. 반면 비올라는 어둡고 고요하고 감정이 풍부한 음색이 있지요.”
굴곡 있는 비올라의 음색은 그가 태어나 자란 미국 워싱턴주 벨뷰와 닮았다. 늘 안개가 끼고 바람이 불던 그곳은 찬란한 햇살이 내리쬐는 로스앤젤레스와는 달랐고, 자연스레 그는 비올라에 빠져들었다.
그의 어머니는 6·25전쟁 때 고아가 돼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집으로 입양됐다. 어릴 적 고열을 앓다가 뇌손상을 입어 언어장애가 있는 어머니는 미혼모로 그를 낳았다. 사실상 외손자를 맡아 키운 외조부모는 손자의 교육에 열성적이었다.
“가난한 시골 농부였던 할머니는 왕복 10시간이 넘는 길을 제 레슨을 위해 한번도 마다하지 않고 차로 데려다 주셨죠. 당시 할머니는 여든이셨는데 말이죠. 벌써 15년이 지난 일인데도 생생해요. 그때 느꼈죠. 내 삶도 중요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나누는 삶도 중요하다는 것을요.”
그래서인지 그는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일에 적극적이다. 유니세프,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로 활동중이다. 지난해에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비올라를 가르치기 위해 바쁜 와중에서도 3주에 한번씩 한국을 찾았다. 그는 “그때 항공사 마일리지가 많이 쌓였다”며 웃었다.
그에게 행복은 무엇이냐고 물으니 “노멀(normal)하고 심플(simple)한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늘 바쁘기 때문인지 평범한 일상이 제일 소중해요. 쇼핑을 하고, 새로 발견한 식당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편하게 자는 거요.” 그리고 그의 삶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달리기다. 이미 여러 차례 마라톤대회를 뛰었다. 지난주도 국내에 오자마자 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3시간 48분의 완주 기록을 세웠다.
첫 예능 출연인 ‘무릎팍도사’ 촬영도 인상적이었다. “평소 잘 알아듣지는 못해도 가끔씩 그 프로그램을 봤어요. 8시간 정도 촬영했는데 그렇게 오래 찍은 것은 처음이었죠. 어떻게 편집됐는지 정말 궁금해요.”
이름 중 ‘용재’는 ‘용기’와 ‘재능’을 합친 말로 2002년 세종솔로이스츠 강효 예술감독이 지어준 것이다. 그는 이름처럼 타고난 재능에 용기와 나눔의 삶까지 더해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큼 성큼 나아가고 있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